노스이스턴대의 크리스토프 리들(Christoph Riedl) 교수가 관련 실험 13건을 한데 모아 분석했더니, 놀랄 만큼 일관된 패턴이 나왔습니다. 직원이 "이 보고서, AI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밝히는 바로 그 순간, 관리자가 평가를 인색하게 하더라라는 겁니다. The Next Web이 이 결과를 소개하며 붙인 이름이 'AI 페널티'(AI penalty)입니다.
문제는 이게 개인 관리자 몇 명의 편견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같은 회사가 왼손으로는 "AI 좀 쓰라"고 등을 떠밀면서, 오른손으로는 정직하게 밝힌 사람의 손등을 때리는 구조. 권장과 처벌이 한 몸에 붙어 있는 겁니다. ㅎㄷㄷ 오늘은 이 역설을 같이 뜯어보겠습니다.
AI를 썼다고 말하는 순간, 평가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
리들 교수팀의 AI 페널티 연구는 참가자 4,956명을 대상으로 한 13개 실험의 묶음입니다. 핵심 결과는 단순합니다. 똑같은 결과물을 놓고도, "AI를 썼다"고 알려진 작업자에게 사람들이 더 적은 보상을 매겼습니다. 결과물의 품질이 동일해도 그랬고요. 보상의 형태나 시점, 작업의 종류를 바꿔도 페널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연구팀은 두 가지 심리를 지목합니다. 하나는 인지된 노력(perceived effort)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된 주도성(perceived agency)입니다. AI를 썼다고 하면 평가자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셈합니다. '저 사람은 힘을 덜 들였겠지, 그리고 진짜 머리를 쓴 건 저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겠지.' 리들 교수의 표현이 특히 날카롭습니다. 어떻게 썼는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AI 사용 사실만 공개되면, 관리자의 기본 가정은 주도권을 기계에 넘겨줬을 것으로 굳어진다는 겁니다.
여기서 억울한 대목이 생깁니다. 실제로 이 연구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한 직원(Aubrey)은 1년 가까이 붙들고 진행한 프로젝트를 관리자가 'AI가 만든 결과물' 정도로 축소해 버리는 바람에 미지근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코딩 에이전트를 썼다고 투명하게 밝힌 또 다른 직원(Deepak)은 승진이 멈췄고요. 실무의 8할을 사람이 감당했더라도, '기계가 했겠지'라는 한마디 단정이 그 8할을 지워 버립니다.
정직이 손해가 되는 구조 — 학술 근거
또다른 연구도 비슷한 맥락을 가집니다. 올리버 슐케(Oliver Schilke)와 마르틴 라이만(Martin Reimann)이 2025년 조직행동 분야 정상급 저널인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발표한 연구입니다. 제목부터 '투명성의 딜레마'(The transparency dilemma)죠.
두 사람은 13개의 실험을 통해, AI 사용을 공개한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일관되게 '덜' 신뢰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학생은 AI가 채점했다고 들은 교수를 덜 믿었고, 투자자는 AI로 분석한다고 밝힌 펀드에 돈을 덜 넣었으며, AI 도움을 밝힌 디자이너와 지원자는 기회를 잃었습니다. 연구팀은 그 배경에 '정당성'(legitimacy) 인식의 하락이 있다고 봅니다. 공개하는 순간, 저 사람의 결과물이 정당한 자기 실력인가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거죠.
여기서 끝났다면 결론은 "그럼 숨기는 게 낫네"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이 연구의 진짜 무서운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몰래 쓰다가 제3자에게 들통났을 때의 신뢰 하락은, 스스로 공개했을 때보다 '더' 컸습니다. 연구팀의 결론을 그대로 옮기면, 몰래 쓰다 걸리는 쪽이 한층 나빠서 그나마 투명성이 두 악(惡) 중 덜한 쪽이라는 겁니다. 공개하면 깎이고, 숨기다 걸리면 더 깎인다. 직원 입장에서는 완벽한 딜레마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회사는 AI를 쓰라고 합니다. 정직하게 밝히면 평가가 깎입니다. 그렇다고 숨기면 걸렸을 때 더 크게 무너집니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이 계산을 빠르게 마치고, 가장 조용한 선택지로 숨어듭니다. 밝히지도 걸리지도 않게, 아주 은밀하게.
이게 왜 '섀도 AI'로 이어지는가
지난 호에서 다룬 섀도 AI(회사 몰래 쓰는 AI)를 기억하실 겁니다. AI 페널티는 그 섀도 AI를 키우는 정확한 연료입니다. 평가가 정직을 처벌하는 한, 사람은 정직을 그만두지 처벌을 그만두지 않으니까요. 현장에서도 조짐이 보입니다.
(예) 한 IT 기업의 A팀장은 팀원이 올린 기획서를 훑어보다 무심코 던졌습니다.
"이거… GPT가 써준 거 아냐?"
농담 반이었다지만, 그 팀원은 다음 분기부터 AI로 초안을 잡고도 회의에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실제로는 열 개의 초안을 AI로 빠르게 돌려 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뼈대를 다시 세운, 꽤 밀도 높은 작업이었는데도요. 팀장은 그 판단과 편집의 노동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평가자가 잃은 건 신뢰가 아니라 정보입니다. 팀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지, 볼 수 있는 창문 하나가 닫힌 셈이죠.
조직이 이걸 방치하면 두 가지가 함께 무너집니다. 하나는 정직입니다. 밝히면 손해라는 학습이 쌓이면, 조직 전체가 은폐를 기본값으로 삼습니다. 다른 하나는 평가의 정확성입니다. 누가 무엇으로 어디까지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매기는 점수는, 그냥 인상비평입니다.
이 지점은 제가 예전에 삼성전자, '엄격한' 성과평가의 속내에서 짚었던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평가 방식을 택하든, 부작용을 줄이는 정교한 장치가 없으면 좋은 취지가 되레 사람들의 행동을 비틀어 버린다는 것. AI 페널티는 그 부작용의 2026년 판본입니다.
그러면,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나
다행히 두 연구 모두 처방의 실마리를 함께 내놓았습니다. 리들 교수팀은 결정적인 완화 조건을 하나 찾았습니다. 작업자가 핵심 과업에서 자기 주도성을 지켰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페널티의 상당 부분이 회복됐다는 겁니다. 열쇠는 여기 있습니다. 문제는 AI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썼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리더가 할 일은 그 '어떻게'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고요.
첫째, 평가 대상을 다시 정의하십시오.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는 이제 평가 항목이 아닙니다. 물어야 할 것은 이겁니다. 무엇을 판단했고, 무엇을 버렸으며, 결과물의 최종 책임을 지는가. AI가 초안 열 개를 뽑았어도 그중 하나를 고르고 뼈대를 다시 세운 판단은 사람의 몫입니다. 평가는 그 판단의 질을 겨눠야 합니다.
둘째, 공개의 문법을 바꾸도록 도우십시오. AI 썼습니다라는 맨숭맨숭한 고백은 앞서 봤듯 페널티를 부릅니다. 대신 "리서치는 AI로 30분 만에 훑고, 고객 데이터 해석과 최종 논지는 제가 세웠습니다"처럼 기여의 지도를 그리게 하는 겁니다. 팀 보고 양식에 AI 활용 구간과 내 판단 구간을 나눠 적는 칸 하나를 두는 것만으로도, 평가자가 반사적으로 내리는 기계가 했겠지 식의 단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리더가 먼저 공개에 나서십시오. 심리적 안전감이 가장 낮은 계층이 실은 중간 관리자라는 점을 심리적 안전감이 제일 낮은 계층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완벽한 척할수록 아래는 숨습니다. "나도 이 자료 초안은 AI로 잡고 이렇게 다시 손봤다"고 리더가 먼저 과정을 보여 주면, 공개가 흠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라는 신호가 조직에 퍼집니다.
넷째, 규정으로 못을 박으십시오. 리들 교수팀은 AI 사용을 이유로 한 보상·평가 삭감을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페널티를 실제로 줄였다고 보고합니다.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지 마시고, "정직한 공개는 불이익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를 평가 가이드라인에 한 줄로 명시하는 편이 훨씬 튼튼합니다.
마무리
기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직을 처벌하도록 설계된 평가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정직에 벌금을 매기는 조직은, 오래지 않아 정직 자체를 잃습니다. 남는 건 더 깊이 숨은 AI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평가자뿐이고요. 이번 주, 우리 팀의 평가 기준이 혹시 '누가 밝혔나'를 벌하고 '누가 잘 숨겼나'를 눈감아 주고 있진 않은지, 한 번쯤 뒤집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