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조직문화라는 말, 한 해에 몇 번이나 듣나요? 워크숍에서, 임원 회의에서, 새로 온 컨설팅 제안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 단어를 가운데 두고 얘기해보면 묘한 일이 벌어지죠. 다들 열심히 말하는데 결론이 안 납니다. 누구는 수평적 소통을 말하고, 누구는 도전정신을 말하고, 또 누구는 워라밸을 말합니다.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저마다 다르니 대화가 겉돌 수밖에요. 여러 문제점을 얘기하다 누군가 '이게 다 조직문화 탓인가봐요'하면 '그런가...'하며 얘기가 끝나버립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조직문화는 너무 넓거든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핵심가치, 일하는 방식, 회식 분위기, 의사결정 습관까지 전부 그 안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큰 그릇을 앞에 두고 바꾸자고 하면, 논의는 늘 안개 속에서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문화 프로젝트가 멋진 슬로건 하나 걸고 조용히 사라집니다.
오늘은 이 안개를 걷어낼 아주 구체적인 한 수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조직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추상적인 선언 대신 손에 잡히는 것부터 손대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첫 단추로 저는 경영진 회의를 공개할 것을 권해드리려 합니다.
왜 하필 경영진 회의인가
조직문화 학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의 가장 표층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 즉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과 관행이 놓여 있다는 겁니다. 뿌리 깊은 가치관은 그 아래 숨어 있고요. 그러니 문화를 바꾸려면 뿌리를 붙잡고 씨름하기 전에, 표층의 눈에 보이는 관행부터 손대는 편이 빠릅니다. 관행이 바뀌면 시간이 지나며 그 아래 믿음도 따라 움직이거든요.
그렇다면 조직에서 가장 상징적인 관행이 무엇일까요? 저는 경영진 회의라고 봅니다.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결정 과정에서 누구 목소리가 크고 누가 침묵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긴 자리니까요. 구성원들은 이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늘 궁금해합니다. 동시에 가장 모릅니다. 이 정보 격차가 바로 불신의 씨앗이 되죠.
한 제조업 회사의 B 임원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위에서 뭘 결정하는지 모르니까, 늘 최악을 상상해요."
정확한 진단입니다. 정보가 닫혀 있으면 사람은 빈칸을 불안으로 채웁니다. 그러니 조직문화를 바꾸는 가장 손에 잡히는 레버는, 바로 이 닫힌 방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이미 중앙정부의 국무회의, 수보회의는 일부 공개되었고, 부산, 울산에서도 시작됐습니다.
이미 문을 연 회사들
막연한 이상론이 아닙니다. 실제로 회의를 열어젖힌 회사들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입니다.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회사의 거의 모든 회의를 녹화해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른바 완전한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이죠.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1993년, 최측근 세 명이 달리오에게 당신이 너무 직설적이라 조직을 다치게 한다는 메모를 건넸고, 여기서 그는 모든 대화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합니다. 변호사들은 증거를 만드는 셈이라며 말렸지만, 달리오는 오히려 다 공개하면 잘못을 저지를 여지가 줄어든다고 봤습니다. (CNBC)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위계나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었죠.
좀 더 온건한 방식도 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임원 회의가 끝나면 24시간 안에 회의록을 전 직원에게 공유합니다. (참고하기 좋은 조직문화 사례 11) 국내에서도 토스처럼 사내 채널에서 경영진과 구성원이 위계 없이 대화에 참여하고, 그 대화가 다시 문화를 갱신하는 순환을 만드는 곳들이 늘고 있습니다.
핵심은 방향입니다. 실시간 생중계든, 다음 날 회의록 공유든, 결정이 내려지는 방 안을 바깥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은 같습니다. 손에 잡히는 관행 하나가, 말로만 외치던 수평·소통·신뢰를 눈에 보이는 현실로 바꾸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다 까면 될까요
여기서 잠깐 멈추셔야 합니다. 투명성이라고 다 같은 투명성이 아니거든요.
슈나켄버그와 톰린슨(Schnackenberg & Tomlinson, 2016)이 Journal of Management에 발표한 연구는 조직 투명성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눕니다. 얼마나 정보를 여는가(공개), 그 정보가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명료성), 그리고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가(정확성)입니다. (Journal of Management) 이 연구의 통찰은 이겁니다. 정보를 많이 푼다고 저절로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 명료하고 정확하지 않으면, 공개는 오히려 혼란과 의심을 키운다는 겁니다.
회의록을 통째로 던져주는 것과, 무엇을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맥락까지 정리해 건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앞엣것은 정보 폭탄이고, 뒤엣것이 진짜 투명성이죠. 부작용도 정직하게 봐야 합니다. 밤버거와 벨로골로프스키(Bamberger & Belogolovsky, 2017)가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는 투명성의 어두운 면을 다룹니다. 맥락에 따라 정보 공개가 구성원 간 협력과 서로 돕는 행동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결과였죠. (연구 소개) 브리지워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전한 투명성이 낳은 그림자, 즉 지나친 압박과 사생활 소멸을 두고 일부 전직 직원들은 압력솥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HBR)
그러니 결론은 이렇습니다. 문을 열되, 설계해서 열어야 합니다. 무작정 다 까발리는 건 무책임에 가깝습니다.
리더십은 관계 속에서 자라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를 지난 호 귀사의 리더십 교육은 안녕합니까?에서 나눈 적이 있는데요. 회의를 여는 일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경영진 혼자 바뀌는 게 아니라, 열린 방을 두고 조직 전체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문화를 다시 쓰는 일이니까요.
마치며
조직문화를 바꾸자는 회의는 늘 거창하게 시작해 흐지부지 끝납니다. 안개 같은 단어를 붙들고 씨름한 탓입니다. 그럴 땐 손에 잡히는 것 하나만 붙잡으시길 권합니다. 가장 상징적이면서 가장 닫혀 있는 자리, 경영진 회의. 그 문을 여는 순간, 수평과 신뢰는 슬로건이 아니라 지난주 회의록이라는 눈에 보이는 사실이 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다 열 필요는 없습니다. 회의록 한 장 공유하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하시면 충분합니다. 조직문화는 그렇게, 손에 잡히는 것에서부터 바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