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한 중견 기업의 임원 워크숍에 코치 자격으로 들어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재무를 총괄하는 상무 한 분이 커피를 들고 다가오시더군요. 표정이 꽤 밝았습니다.
"코치님, 저희가 올해 상담 조직을 30%쯤 줄였거든요. AI 에이전트로 돌렸더니 인건비가 확 줄였어요."
"그런데… 이게 이익으로는 안 잡히네요. 분명 사람은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작년하고 똑같아요. 위에서는 그럼 대체 뭘 아낀 거냐고 물으시고..."
씁쓸한 뒷맛이 남았습니다. 아낀 건 분명한데 손에 쥔 건 없다. 그 상무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국내외 수많은 경영진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거든요. ;;
AX(AI 전환)를 곧 인건비 절감으로 등치(?)시켰다가, 재무제표를 열고 고개를 갸웃하는 리더들 말입니다. 오늘은 이 장면을 정면으로 따져보려 합니다. 감원으로 아낀 그 돈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80%가 잘랐는데, 성과를 가른 건 감원이 아니었다
먼저 숫자 하나를 보겠습니다. 가트너가 2025년 3분기에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기업의 임원 350명을 조사한 결과, AI·자율화 기술을 도입한 기업의 약 80%가 인력을 줄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가트너는 감원율과 AI 투자수익률(ROI) 사이에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습니다(Gartner, 2026). 쉽게 말해 ROI가 높게 나온 기업이나, 겨우 본전이거나 마이너스인 기업이나 감원 비율이 거의 같았다는 겁니다. 많이 자른 회사가 더 잘된 게 아니었어요. ㅎㄷㄷ
그럼 고성과 기업은 뭐가 달랐을까요? 가트너의 답은 명료합니다. 성과를 가른 변수는 얼마나 잘랐느냐가 아니라, 남은 인력에 얼마나 다시 투자했느냐였습니다. 수익을 낸 기업들은 사람을 없애 비용을 줄인 곳이 아니라, 사람을 더 키워서 AI를 능숙하게 부리게 만든 곳이었죠. 가트너는 이걸 사람을 대체하는(replace) 접근과 사람을 증폭하는(amplify) 접근의 차이라고 불렀습니다(Fortune, 2026).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감원은 예산에 빈방 하나를 내줄 뿐, 그 방을 무엇으로 채우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죠. 우리 상무님은 방을 비우고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채 다음 분기를 맞은 셈입니다.
사실 학계는 20년 전에 답을 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갈 대목이 있습니다. 감원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실은 AI 시대에 처음 나온 발견이 아닙니다.
경영학자 거스리와 다타(Guthrie & Datta)가 2008년 조직과학 저널 Organization Science에 발표한 연구를 보겠습니다.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감원은 이후의 수익성 개선과 연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특정 조건에서는 감원이 뒤이은 수익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어떤 조건이었을까요? 바로 연구개발 집약도가 높고, 성장하고 있으며, 자본 집약도가 낮은 산업이었습니다(Guthrie & Datta, 2008).
이 대목에서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R&D 집약적이고, 빠르게 성장하고, 설비보다 사람 머리로 굴러가는 산업 — 이거 지금 AI를 가장 공격적으로 도입하는 바로 그 회사들의 특성 아닌가요. 20년 전 데이터가 오늘의 AX 기업에 그대로 겹쳐 읽히는 겁니다. 지식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사람을 걷어내면, 아낀 인건비보다 잃어버린 역량이 더 크다는 거죠.
사실 감원의 진짜 비용은 재무제표의 인건비 줄에 찍히지 않습니다. 떠난 사람의 지식, 남은 사람의 불안, 다시 채용할 때 드는 돈 — 이 세 곳에 흩어져 숨어 있죠. 특히 이들은 감원 이후 살아남은 구성원의 사기 저하, 몰입 하락, 핵심 인재 이탈 — 이른바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도 추가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잘랐던 자리를 다시 채우고 있습니다
이론이 그렇다면 현장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이미 되돌리는 중입니다.
- 로버트 하프 조사에서, AI를 이유로 감원한 조직의 29%가 잘라낸 바로 그 자리를 이미 다시 채웠습니다.
- 커리어마인즈 조사에서는 AI 감원 기업의 52.1%가 6개월 안에 재고용했고, 17.8%는 3개월 안에 다시 뽑았습니다.
- 포레스터는 AI로 사람을 대체한 경영진의 55%가 18개월 안에 그 결정을 후회할 것으로 봤고, 가트너는 2027년까지 고객서비스 인력을 없앤 기업의 절반이 유사 직무를 다시 채용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Forbes, 2026).
압권은 비용입니다. 커리어마인즈에 따르면 AI 감원 기업의 30.9%가 처음 절감한 돈보다 재고용에 더 많은 돈을 썼고, 42.4%는 본전에 그쳤습니다(JobsPikr, 2026). 열 곳 중 일곱 곳이 밑지거나 본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다시 부른 사람에겐 웃돈이 붙습니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가 상징적입니다. 2024년 AI가 상담원 700명분의 일을 처리한다고 자랑했다가, 2025년 슬그머니 상담 인력을 다시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AI가 6~12개월 동안 그 직무의 60%는 훌륭히 처리하는데, 나머지 40% — 판단하고, 고객 이력을 기억하고, 예외를 걸러 위로 올리는 그 일 — 을 못 해내기 때문입니다. 결국 원래 사람을 다시 부르게 되는 거죠.
이 흐름은 사실 제가 지난 가을 AI 해고의 역풍이 분다에서 한 번 짚어드린 조용한 재고용의 연장선입니다. 그때 55%라는 후회 수치가 예언처럼 들렸다면, 지금은 결산서에 찍힌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 셈이고요.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진단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실전입니다. 요지는 하나입니다. 감원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자르는 행위가 아니라, 자른 다음이 비어 있다는 데 있으니까요. 남는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를 자르기 전에 설계하시라는 겁니다. 네 가지만 챙기시길 권합니다.
첫째, 감원 계획서보다 재투자 계획서를 먼저 쓰세요. 아낄 인건비의 일정 비율 — 이를테면 절반 — 을 남은 구성원의 재교육과 재배치에 쓰겠다고 숫자로 못 박아 두시길 바랍니다. 가트너가 확인한 고성과 기업의 공통점이 바로 이 재투자거든요. 아낀 돈이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그 돈은 아낀 시간이 잡무로 흩어지듯 성과 없이 증발합니다. 이 재투자 설계의 원리는 지난 호 AI로 아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자세히 풀어드렸으니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둘째, 자르려는 것이 직무인지 과업인지 구분하세요. AI는 사람의 자리(job)를 통째로 대신하는 게 아니라, 그 안의 반복 과업(task)만 덜어냅니다. 상담원이라는 자리에는 응대 말고도 판단·공감·예외 처리라는 과업이 겹겹이 들어 있죠. 과업 단위로 쪼개 보지 않고 자리째 없애면, AI가 못 하는 40%가 고스란히 구멍으로 남습니다. 자리를 지우기 전에, 그 자리 안의 과업 목록부터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재고용 비용을 지금 계산서에 넣으세요. 6개월 뒤 다시 뽑을 확률이 절반이라면, 그건 이미 비용입니다. 채용·교육·적응 기간의 생산성 손실에 웃돈까지 얹어 계산하면, 첫해 절감액은 생각보다 빠르게 녹습니다. 절감액에서 예상 재고용 비용을 빼고도 남는 게 있을 때에만 감원이 숫자로 성립합니다. 여기서 마이너스가 뜬다면, 그건 절감이 아니라 유예된 지출입니다.
넷째, 남은 사람의 사기를 측정하세요. 감원의 가장 큰 청구서는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학계가 말하는 생존자 증후군 — 다음은 나 아닐까 하는 불안, 늘어난 업무, 떨어진 몰입 — 이 소리 없이 성과를 깎거든요.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는 HR 리더 열 명 중 아홉 명이 AI 감원 결정을 후회한다고 답했습니다(CPA Practice Advisor, 2026). 감원 뒤 3개월, 6개월 시점에 남은 구성원의 몰입도와 이탈 조짐을 반드시 점검하시길 권합니다.
마무리하며
워크숍 말미에, 저는 그 상무님께 이렇게 여쭤봤습니다. 줄인 30% 자리에서 아낀 돈으로, 남은 70%를 위해 무엇을 하셨느냐고요. 상무님은 잠깐 말이 없으시더군요.
바로 거기에 답이 있었습니다. 감원은 성과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성과를 만들 여지를 내주는 행위일 뿐입니다. 그 여지를 사람에 대한 재투자로 채운 기업만 손익계산서에서 웃었습니다. 자른 자리를 비워둔 채 이익을 기다린 기업은, 반년 뒤 같은 사람을 웃돈 주고 다시 부르고 있고요. AX의 승부처는 얼마나 빨리 자르느냐가 아니라, 남긴 사람을 얼마나 키우느냐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방송이 어제 있었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