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이든 영업이익이든 수주액이든, 숫자가 창사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면 평가 회의 분위기는 대개 정해져 있죠. "올해 우리 성과관리 체계가 제대로 돌아갔다"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고, 그 팀의 리더는 최상위 등급 후보에 오릅니다.
이번과 다음 호에서는 이 해석을 반박하지 않고, 검증할 질문으로 바꿔 보려 합니다. "올해 신기록은 성과를 만드는 체계가 갖춰졌다는 증거인가?" 검증하려면 이 주장이 틀렸다고 판단할 기준부터 정해야 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겠습니다. 첫째, 같은 조건이 주어져도 내년에 비슷한 수준을 다시 낼 수 없다면 주장은 틀립니다. 둘째, 결과의 대부분이 팀의 선택과 행동이 아니라 시장 순풍이나 대형 고객 한 곳 같은 외부 변수로 설명된다면 역시 틀립니다. 셋째, 그 숫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체계가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기준을 들고 지지 근거와 반례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결론은 "신기록은 의미 없다"가 아닙니다. 주장이 맞는 조건과 틀리는 조건이 꽤 분명하게 갈립니다.
주장을 가장 그럴듯하게 세워 보면
먼저 "결과가 곧 증거"라는 쪽의 논리를 공정하게 세워 보겠습니다. 여기서 성과는 결국 결과로 말합니다. 과정이 아무리 훌륭해도 숫자가 안 나오면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과거 성과가 미래 성과를 꽤 잘 예측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Sturman, Cheramie, Cashen(2005)이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한 메타분석이 대표적입니다. 직무 복잡성과 측정 방식이 성과 평정의 시간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1년 간격으로 잰 개인 성과 평정의 안정성은 대략 .67에서 .85 사이였습니다. 측정 간격이 길어질수록 상관은 낮아졌지만 0까지 떨어지지는 않았고요. 잘하던 사람은 이듬해에도 대체로 잘한다는 뜻이니, 올해 높은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데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측정의 재검사 신뢰도가 조건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단순한 직무를 주관적 평정으로 잴 때는 .83이었는데, 복잡한 직무를 객관적 지표로 잴 때는 .50까지 내려갔습니다. 리더가 평가 회의에서 들여다보는 숫자는 대부분 복잡한 일의 결과를 객관 지표로 잰 것입니다. 매출, 이익, 수주액이 다 그렇죠. 이 연구는 개인 평정을 다뤘으니 조직 단위 실적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복잡한 일일수록 한 해의 숫자가 이듬해를 덜 예측할 수 있다"는 방향은 리더가 참고할 만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과거 성과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주장은 대체로 맞지만, 바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종류의 숫자에서 그 예측력이 가장 약할 수 있습니다.
반례 1: 사상 최대 실적에 시장이 던진 질문
요즘 한국에서 이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장면은 반도체 업계에서 나왔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2분기에 영업이익 60조 5천억 원, 영업이익률 76%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냈습니다. 그런데 SBS Biz 보도에 따르면 발표 뒤 주가는 10%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시장이 문제 삼은 것은 올해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AI 투자 수요가 계속될지, 중국이 생산능력을 키워 2028년 이후 시장이 재편될지 같은 내년 이후의 질문이었죠.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이 사례를 "SK하이닉스에는 성과 체계가 없다"는 근거로 쓰면 안 됩니다. HBM 경쟁력은 오랜 기술 투자의 결과이고, 주가는 성과 체계를 판정하는 장치도 아닙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보는 것은 평가의 관점입니다. 가장 냉정한 평가자라 할 수 있는 시장도 신기록 앞에서 "이 숫자가 내년에도 나오는가, 무엇 덕분에 나왔는가"를 물었다는 사실이죠. 시장은 올해 결과를 보고 미래를 가격에 매깁니다. 사내 평가가 올해 숫자만 보고 끝난다면, 시장보다 덜 엄격하게 평가하는 셈입니다.
반례 2: 탁월함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얼마나 오래 봐야 하나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연구가 있습니다. Henderson, Raynor, Ahmed(2012)가 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How long must a firm be great to rule out chance?입니다. 1965~2008년 미국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 성과가 순전히 확률적으로 순위를 오르내린다고 가정한 모형을 시뮬레이션해 실제 기업과 비교했습니다. 이 연구가 던진 질문은 "어떤 기업이 몇 년 동안 상위 성과를 내야 운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이 성립한다는 사실 자체가 리더에게는 메시지입니다. 무작위로 움직이는 시스템에서도 몇 해 연속 상위권에 오르는 기업은 꽤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의 탁월함만으로는 실력과 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한 해의 신기록은 그보다 더 짧은 증거입니다.
비슷한 논쟁이 CEO 효과에서도 있었습니다. Markus Fitza(2014)는 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존 연구들이 CEO가 기업 성과에 미친다고 추정한 영향력의 상당 부분이 실은 우연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대형 기업 1,500곳의 1993~2012년 자료와, 성과가 오직 우연으로만 정해지는 가상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입니다. 텍사스 A&M의 연구 소개 자료는 그 비율을 "70% 이상"으로 요약했습니다. CEO 평균 재임 기간이 4년 남짓이라 운의 효과가 상쇄될 만큼 길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고요. 반론도 함께 봐야 공정합니다. Quigley와 Graffin(2017)은 같은 저널에 반박 논문을 내고, Fitza의 방법이 우연의 몫을 상당히 과대평가했으며 다층모형으로 분석하면 CEO 효과가 유의하게 더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리더의 영향은 미미하다"는 결론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닙니다. 다만 이 논쟁에서 양쪽 모두 받아들이는 전제가 있습니다. 짧은 기간의 결과에는 운이 생각보다 크게 섞여 있고, 그것을 빼고 봐야 리더의 몫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Denrell, Fang, Liu(2015)는 Organization Science에 실은 Chance Explanations in the Management Sciences에서 아예 우연을 경영학의 핵심 설명 변수로 다루자고 제안했습니다. 구조가 있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무작위성이 거시적으로는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어 낸다는 주장입니다. 평가에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올해 최고 성과를 낸 팀이 내년에 조금 덜 낸다면, 그 팀이 나빠졌다기보다 올해 숫자에 섞여 있던 행운이 빠진 결과일 수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