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지난 9월 한 달에만 이 고민을 다룬 글을 두 편 내놓았습니다. 일이 팀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설 때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 의지가 아니라 물량의 문제 — @HBR 9월의 두 글
첫 글은 HBR.org 매니징 에디터 그레천 개빗(Gretchen Gavett)이 9월 22일 HBR 뉴스레터 The Insider에 쓴 What to Do When There's Too Much Work입니다. 개빗은 지난 1년 동안 진행한 구독자 설문(Insider Insights)에서 업무량 자체가 본인과 팀의 고민으로 꾸준히 올라왔다고 전합니다. 원인으로는 AI 도입, 감원, 예산 압박, 혹은 이것들이 한꺼번에 겹친 경우를 꼽고요. 개빗이 그리는 장면은 팀은 일에 파묻혀 있는데 리더도 더는 받아낼 여력이 없는 국면입니다. 다만 몇 퍼센트가 그렇게 답했는지 같은 수치는 공개된 부분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설문을 규모의 증거라기보다 방향의 신호로 읽었습니다. 글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할 때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질 수 있다."(everything can feel futile when it's impossible to make progress)
개빗이 그 해법으로 권하는 글이 바로 두 번째 아티클, 임원 코치이자 『Managing Up』의 저자 멜로디 와일딩(Melody Wilding)이 9월 16일에 쓴 When There's More Work Than Your Team Can Handle입니다. 와일딩은 코칭 고객 크리스의 사례로 글을 엽니다. 금융서비스 회사의 법무 책임자가 된 크리스는 첫해에 회사가 대형 인수 세 건을 연달아 마무리하면서 계약 검토, 컴플라이언스 신고, 규제 대응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국면을 맞습니다. 일을 나누려 하자 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저희도 한계입니다."(we're doing our best, but we're at capacity)
크리스는 결국 밤과 주말을 갈아 넣어 그 일을 직접 처리했고, 그러는 사이 정작 자신이 붙들어야 할 전략적 리더십을 놓치게 됩니다. 와일딩의 진단은 단도직입적입니다. 요구는 늘고 자원은 줄어드는 판에서 리더가 일을 혼자 떠안으면 리더 자신이 번아웃으로 무너지고, 이미 지친 팀을 더 몰아붙이면 신뢰가 깎이고 이탈이 늘어난다는 거죠. 어느 쪽이든 청구서는 날아옵니다. 그래서 와일딩은 더 버티는 쪽이 아니라 일의 설계와 권한의 배치를 다시 짜는 쪽을 권합니다. 개빗은 이를 리더의 접시에서 일을 덜어내고, 직원을 지치게 하는 대신 힘을 실어주는 다섯 가지 전략으로 요약하는데요, 공개된 범위에서 확인되는 건 네 가지입니다.
첫째, 무엇을 멈추고(pause), 줄이고(scale back), 뺄지(cut)를 팀과 함께 정합니다. 동시에 위로는 자원을 더 달라고, 혹은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목소리를 냅니다. 아래로는 덜어내고 위로는 요구하는 양방향 작업인 셈입니다. 둘째, 판단 기준을 구성원에게 드러냅니다. 개빗은 이를 리더의 생각을 내려받게 하는 일(downloading your thinking)이라고 부르는데, 무엇을 따지고 무엇을 앞세우며 무엇을 왜 놓아도 되는지를 적어주면 팀이 리더의 결재를 기다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리더가 병목이 되는 걸 막는 장치죠. 셋째, 일을 넘길 때 권한도 함께 넘깁니다. 상사나 협업 부서에도 혹시 넘길 수 있는 작은 일이 없는지 물어보라고 하고요. 넷째, 새로 맡기는 역할을 그 사람이 무엇에 동기부여되는지와 잇습니다. 같은 일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일 때와 떠넘겨진 짐으로 받아들일 때 무게가 전혀 다르니까요.
둘. 착한 사람이 먼저 지친다 — Bolino & Turnley(2005)
이번 호에서 가장 곱씹어볼 연구입니다. 마크 볼리노(Mark Bolino)와 윌리엄 터넬리(William Turnley)가 2005년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 The Personal Costs of Citizenship Behavior는 질문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시키지 않은 일까지 알아서 챙기는 행동, 즉 조직시민행동(OCB)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대가를 어디서 치를까? 그때까지 연구는 대부분 조직시민행동의 밝은 면만 비춰왔거든요.
연구진은 98쌍의 부부를 조사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측정 방식인데요, 직원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일을 더 맡는지(individual initiative)를 본인이나 상사가 아니라 배우자가 평가하게 했습니다. 집에서 보는 눈이 더 정직할 수 있으니까요. 야근 횟수는 배우자가 제일 잘 압니다. 결과는 또렷했습니다. 배우자가 보기에 주도성이 높은 직원일수록 역할 과부하, 직무 스트레스, 일-가정 갈등을 더 많이 보고했습니다. 일-가정 갈등과의 관계는 여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고요.
셋. 압박이 붙으면 선의는 바닥난다 — 시민 피로 연구
볼리노는 10년 뒤 이 주제를 한 단계 더 파고듭니다. 2015년 같은 저널에 동료들과 발표한 Well, I'm Tired of Tryin'! 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 and Citizenship Fatigue는 시민 피로(citizenship fatigue)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남을 돕고 일을 더 맡느라 지치고, 날이 서고, 녹초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번아웃과 닮았지만 본업 성과는 여전히 괜찮을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는 뜻이죠.
애리조나주립대의 연구 해설에 따르면 연구진은 대만 사립대학 교수 273명과 그 동료들을 7개월 동안 세 차례 조사했습니다. 조직시민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모두 지치지는 않았습니다. 조직이 자신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더 나서라는 압박을 받을 때 피로가 커졌습니다. 반대로 팀원 간 관계가 좋으면 피로가 누그러졌고요. 지친 사람은 이후 덜 나섰습니다. 공동 저자 제프 르파인(Jeff LePine)의 말이 아프게 와닿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기준을 높여놓고, 그 기준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They've raised the bar for themselves, and then they can't clear that bar)
정리하며: 빼는 결정은 리더만 내릴 수 있습니다
일이 넘칠 때 아무도 빼지 않으면 그 틈은 가장 성실한 사람이 메웁니다. 직원은 일을 뺄 권한이 없으니까요.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엇을 안 할지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건 리더의 책무입니다. 지난해 8월 [지금리더] 성장이 정체돼있다고 느끼나요?에서 과도한 업무와 긴급 현안이 리더의 성장을 갉아먹는 구조를 다뤘는데요, 같은 구조가 직원에게도 고스란히 내려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와일딩의 전략과 연구를 엮어, 4분기 남은 열한 주를 앞두고 이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 이번 주 안에 팀의 할 일을 한 장에 펼쳐보세요. 혼자 고르지 말고 팀과 함께 멈출 것, 줄일 것, 뺄 것을 각각 하나 이상 정하세요. 다 중요하다는 건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 뺀 것은 소리 내어 선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상사와 유관 부서에 알리면서, 그래도 남는 일에는 인력이나 일정 조정을 요청하세요. 알리지 않으면 성실한 누군가가 조용히 그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겁니다.
- 일을 다시 나눌 때는 누가 잘 받아주는지보다 지금 누구 짐이 무거운지부터 확인해보세요. 원온원에서 "지금 맡은 것 중 내려놓고 싶은 게 있나요? 대신 해보고 싶은 건요?"라고 물으면 짐의 지도와 동기의 지도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 리더의 판단 기준을 한 장으로 적어 공유하세요. 무엇을 먼저 보는지, 무엇은 놓아도 되는지 적어두고 결정 권한까지 함께 넘기면 리더 결재 앞의 대기줄이 짧아집니다.
- 리더 본인의 야근부터 줄여보세요. 와일딩의 크리스처럼 혼자 버티는 모습은 팀에게 그렇게 하라는 신호가 되기 쉽습니다.
덜어내는 리더는 게으른 리더가 아닙니다. 팀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을 지키는 리더입니다. 이번 4분기는 무엇을 뺄지부터 정하고 출발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