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영회의에서 AX라는 말이 빠지는 날이 드뭅니다.
"올해 안에 전사 AX 로드맵 확정합시다. 어떤 모델을 쓸지, 인프라는 얼마나 필요한지부터 보고해 주세요."
회의가 끝나면 IT 조직은 벤더 비교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인사팀은... 딱히 받아 든 숙제가 없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 낯익습니다. (사실, 많은 조직에서 AX전담팀은 IT가 맡고 있습니다 흐미) 10년쯤 전 DX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회의가 열렸거든요. 그때도 클라우드, 빅데이터, RPA가 안건 맨 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사람과 제도는 맨 아래 기타 칸에 있었죠. 그래서 오늘은 AX라는 유행어를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뜯어보려 합니다. 과장은 없는지 따져보고, 우리가 DX의 실패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AX가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부터 인정하고 갑시다
AX를 유행으로만 치부하면 그것도 게으른 판단입니다. 판이 실제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는 차고 넘칩니다. McKinsey의 The state of AI in 2025를 보면 AI로 EBIT를 5% 이상 끌어올렸다고 답한 이른바 고성과 기업이 응답 기업의 약 6%였습니다. (2026년 같은 조사에서 37%가 영업이익에 AI가 기여했다고 응답) BCG의 2026년 AI Radar를 소개한 What's Driving AI Value에서는 CEO의 절반 이상이 AI 성과가 부진하면 자기 자리가 위태롭다고 답했습니다. 사장님들이 밤잠을 설칠 만한 숫자입니다.
국내도 예외가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임원들의 KPI에 AX 관련 비중을 20%로 잡았습니다. 지난 5월 대한리더십학회 학술대회는 아예 AX 리더십을 화두로 걸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는 AI 전환을 경영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시스템을 들이는 일로 끝나지 않고 조직 구조, 권한, 책임, 성과 관리 방식을 새로 정의하는 일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AX 자체는 진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DX 때보다 변화의 폭이 더 크다고 봅니다. 사람이 하던 판단의 일부까지 기계로 넘어가니까요.
여기서 곧바로 짚고 갈 대목이 있습니다
걸리는 건 AX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느냐입니다. 지금 많은 조직에서 AX는 사실상 AI 도입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모델, 플랫폼, 라이선스, 에이전트... 예산표 대부분이 기술 항목으로 채워지죠. 저는 바로 이 지점이 가장 불안합니다. DX가 어디서 넘어졌는지 우리는 이미 답안지를 받아 봤기 때문입니다.
BCG가 2020년에 낸 Flipping the Odds of Digital Transformation Success는 고위 경영진 825명을 조사했습니다. 디지털 전환의 70%가 목표에 못 미쳤다고 합니다. ㅎㄷㄷ 목표를 달성하고 지속되는 변화까지 남긴 경우는 30%였습니다. 가치는 일부 냈지만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44%, 목표 가치의 절반도 못 낸 경우가 26%였죠. 흥미로운 건 성공을 가른 여섯 가지 요인입니다.
- 명확한 전환 목표를 담은 통합 전략
- CEO부터 중간관리자까지 이어지는 리더십 헌신
- 역량 있는 인재의 배치
- 장애물을 빨리 걷어내는 애자일 거버넌스
- 정해진 성과를 향한 진척 모니터링
- 비즈니스가 주도하는 모듈형 기술·데이터 플랫폼
여섯 개 중 기술은 맨 마지막 하나뿐입니다. 그마저도 비즈니스가 주도한다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여섯 가지를 모두 챙긴 기업은 성공 확률이 30%에서 80%로 뛰었다고 하고요. 이 목록을 다시 읽을 때마다 저는 묘하게 허탈해집니다(이렇게 뻔한 걸 왜 매번 놓칠까요?). 나머지 다섯 개는 네 가지 물음으로 모입니다. 인력을 어디에 둘 것인가, 조직이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어떤 규칙으로 결정할 것인가,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인력 전환, 조직 전환, 정책 전환, 제도 전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죠. 디지털은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공범도 아니었고요. 현장에 늦게 도착한 쪽은 늘 사람과 제도였습니다.
이건 컨설팅 회사만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조직 연구는 40년 전부터 같은 말을 해왔습니다. Barley(1986)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에 발표한 CT 스캐너 연구는 같은 CT 스캐너를 들여온 두 병원 영상의학과를 관찰했습니다. 기계는 같았지만 기존 영상의학과 의사와 젊은 방사선사가 협력하고 부딪치는 양상이 병원마다 달랐습니다. 그 결과 두 조직의 구조도 다르게 굳어졌죠. Barley는 기술이 조직 구조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립니다. 기술은 구조를 새로 짤 계기를 줄 뿐이고, 그 계기를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Edmondson, Bohmer, Pisano(2001)가 같은 저널에 발표한 Disrupted Routines 연구는 더 직접적입니다. 연구진은 미국 심장외과 16곳이 최소침습 심장수술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모두 평판과 수술 성적이 최상위권인 병원이었는데도 도입 성과는 극명하게 갈렸죠. 성공한 병원은 실패한 병원과 질적으로 다른 팀 학습 과정을 거쳤고, 그 중심에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었습니다. 외과의가 아닌 구성원도 가파른 위계를 넘어 말할 수 있었고, 오래 굳어진 역할을 다시 협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팀이 기술을 제대로 작동시켰죠. 같은 장비를 사도 일하는 방식까지 바꾼 병원은 결과가 달랐습니다.
경제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공장에 전기 모터가 처음 들어왔을 때, 증기기관 자리에 모터만 바꿔 단 공장은 생산성이 별로 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동선과 작업 배치를 통째로 뜯어고친 뒤에야 효과가 났고, 거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고 하죠. 기술은 늘 먼저 오고 조직은 늘 늦게 옵니다.
AX에서 다시 보이는 기술 편향
다시 AX로 돌아오겠습니다. 흥미롭게도 AI 시대의 리포트도 결론이 같습니다. BCG는 10-20-70 원칙을 내세웁니다. AI 가치의 10%는 알고리즘에서, 20%는 기술과 데이터에서, 70%는 사람과 프로세스에서 나온다는 거죠. 앞서 본 BCG 자료가 CEO들에게 굳이 이 원칙을 다시 꺼낸 이유도 여기 있겠죠. McKinsey도 조사한 요인 가운데 업무 흐름(workflow)을 의도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 사업 성과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축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성과 기업이 업무 흐름을 근본부터 재설계할 가능성은 다른 기업의 3배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예산과 관심은 대개 거꾸로 흐릅니다. 70을 차지해야 할 사람과 프로세스는 10 남짓을 받고, 10이면 충분할 알고리즘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모양새죠. 앞의 학회에서 엄창섭 랜덤컴퍼니 대표가 한 말이 이 엇박자를 정확히 꿰뚫습니다.
"AI를 쓰는 것과 조직이 전환되는 것은 다르다"
이 차이가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지난 호에서 몇 번 다뤘습니다. AI 전환에 필요한 조직 재조합에서는 개인 생산성 개선은 80%까지 올라왔는데 전사 확산 단계는 44%에 머문다는 점을 살폈습니다. 그 원인은 나눠 놓은 조직을 다시 붙이지 못한 데 있었죠. 왜 AI 경험이 잘 공유되지 않을까에서는 직원 57%가 AI 사용 사실을 숨기는 그림자 AI 현상을 다뤘고요. AI를 쓴다고 밝힌 사람이 같은 결과물을 내고도 더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는 구조라면, 아무리 좋은 모델을 사도 확산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델 성능보다 평가 제도와 문화가 앞서 발목을 잡는 대목이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X를 하려면 실제로 바꿔야 할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인력 전환입니다. 누가 어떤 일을 내려놓고 무엇을 새로 맡는지 역할을 새로 정의하고 재교육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AI를 핑계로 사람부터 줄이면 정작 새 방식을 굴릴 손이 사라집니다.
둘째, 조직 전환입니다. AI 전담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업과 전담 조직 사이 책임의 경계와 결정 권한의 위치를 다시 그려야 하죠.
셋째, 정책 전환입니다. 어떤 데이터를 써도 되는지, 어떤 결정은 AI에 맡기고 어떤 결정은 사람이 서명하는지를 정하는 규칙입니다. 이게 없으면 현장은 몸을 사리거나, 반대로 몰래 씁니다.
넷째, 제도 전환입니다. 평가·보상·승진 기준이 그대로면 사람들의 행동도 그대로입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꾼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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