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쓰면 개인의 일은 빨라집니다. 제안서 초안, 자료 요약, 데이터 분석 같은 일은 실제로 전보다 훨씬 짧게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회사 차원에서 ROI를 묻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개인은 빨라졌는데, 회사 성과는 그만큼 빨라지지 않습니다.
2026년 8월 McKinsey가 1,7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The state of AI in 2026: On the road to ROI를 보면, 응답자의 80%가 AI 덕분에 개인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AI가 회사의 EBIT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응답은 37%였습니다.
AI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AI 모델의 성능, 사용자의 숙련도, 활용 빈도부터 살펴봅니다. 물론 그런 요인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업무 자체가 아니라 업무와 업무 사이입니다.
증상 1. 일은 빨라졌는데 전체 업무 시간은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제조기업 영업팀이 AI로 수요 예측 보고서를 만든다고 해보겠습니다. 반나절 걸리던 일을 한 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SCM팀으로 넘어갑니다. 재고와 숫자를 맞춥니다. 생산팀은 설비 가동 계획을 확인 고, 재무팀은 매출 전망과 운전자본을 다시 봅니다. 숫자가 어긋나면 영업팀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승인도 기다립니다.
AI가 보고서 작성 시간을 네 시간 줄였는데 다음 의사 결정까지 사흘이 걸린다면, 회사 전체에서 네 시간의 절감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흔히 “AI 활용 수준이 아직 낮아서 그렇다”고 진단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McKinsey가 9월 18일 발표한 Cutting the ‘coordination tax’: How agentic AI can reshape workflows는 이 문제를 coordination tax라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우리말로는 조정세쯤 됩니다.
McKinsey는 지식 집약 조직에서 정렬, 검증, 대조, 대기, 인수인계 같은 조정 활동이 업무 시간의 35~60%를 차지할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McKinsey가 소개한 한 제조기업에서는 실제 처리에 필요한 시간은 12~24시간이었지만 workflow 전체는 9~18일이 걸렸습니다.
일보다 기다림이 길었던 거죠. 이 경우 문제의 원인은 업무 수행 속도가 아닙니다. 업무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기와 조정입니다.
증상 2. AI를 더 넣었는데 병목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AI를 주로 개별 업무에 넣었습니다. 보고서 작성, 자료 검색, 회의록 정리, 코딩, 데이터 분석처럼 말입니다. 업무 프로세스 그림으로 치면 네모 칸 하나하나를 빠르게 만든 셈입니다. 그런데 전체 흐름을 느리게 만드는 곳은 네모 칸 사이의 화살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정이 성과를 좌우한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Gittell(2001)의 항공사 연구는 구성원 간 relational coordination이 높을수록 업무 성과가 좋아지는 경로를 보여줬습니다. Gittell, Seidner와 Wimbush(2010)의 9개 병원 연구에서도 직무 간 coordination이 강할수록 진료의 품질과 효율성이 높아졌습니다. 반대로 Boh, Ren, Kiesler와 Bussjaeger(2007)의 분산 조직 연구는 전문가를 많이 연결한다고 늘 성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분산된 전문가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coordination cost가 커졌고 순이익은 낮아졌습니다. 협업의 양보다 연결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AI 적용 지점도 달라져야 합니다. 네모 칸 하나를 더 빠르게 만드는 데서 멈추면 병목이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화살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증상 3. AI 파일럿은 성공했는데 회사 성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올해 발표된 INSEAD의 Hyunjin Kim, Dahyeon Kim과 Harvard Business School의 Rembrand Koning의 현장실험 Mapping AI into Production: A Field Experiment on Firm Performance도 흥미롭습니다.
515개 고성장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AI를 생산 과정 어디에 배치하는지가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폈습니다. 다른 기업의 AI 활용 방식을 접한 기업들은 AI 활용 사례를 44% 더 많이 찾아냈고, 12% 더 많은 업무를 완료했으며, 매출은 대조 집단의 1.9배였습니다. 현재 working paper이고 스타트업 대상 연구이므로 대기업에도 같은 효과가 난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곱씹게 됩니다. AI 성과는 모델의 성능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업무의 어느 지점에 AI를 넣느냐가 꽤 큰 몫을 합니다.
원인을 찾으려면 네 가지를 확인해 보세요
핵심 workflow 하나를 꺼내보시기 바랍니다.
고객 문의→견적→계약, 채용 요청→공고→면접→입사, 수요 예측→생산 계획→구매처럼 처음과 끝이 분명한 흐름이면 좋습니다.
그리고 네 가지를 짚어보세요.
- 처리 시간과 대기 시간을 나누세요.
15분 일하고 이틀 기다린다면, AI 후보는 15분짜리 작업이 아닐 수 있습니다.
- 담당 주체가 바뀌는 지점을 표시하세요.
영업→생산, HR→현업, 개발→법무처럼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이곳에서 정보가 빠지고 재확인이 왕왕 생깁니다.
- 반복 검증을 찾아보세요.
두 시스템의 숫자를 대조하고, 서류 누락을 확인하고, 규정 기준을 다시 보는 일이 반복된다면 조정 비용이 쌓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 정상 업무와 예외를 분리하세요.
100건 중 94건은 규칙대로 흘러가고 6건만 판단이 필요하다면, 사람이 100건을 모두 볼 이유가 있는지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AI 도입 성공의 필수 요건에서도 workflow의 엇박자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좋겠습니다.
네모 칸만 보지 말고, 화살표를 보세요.
AI가 보고서를 30분 빨리 만드는 것보다 결재와 인수인계에서 이틀을 줄이는 편이 회사에는 더 값질 수 있습니다. 다음 AI 파일럿에서는 업무 하나보다 workflow 하나를 골라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에서 일하고 있고,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다음 AI 투자 대상은 그 답 속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