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제가 진행했던 워크숍 얘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중견기업이었는데, 소통의 기본 원칙을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죠. 이걸 모르니(몰라도 회사 생활하는 데도 지장 없으니까요) 소통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혹시 나의 가치관대로 일하고 있나요?
회사의 가치관, 즉 핵심가치(인재상) 얘기입니다. 다만, 핵심가치는 대부분 해야 할 것들은 담고 있죠.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9월 16일 @HBR에 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 실렸습니다. Nick Hobson과 Margie Warrell이 쓴 Will Your Organization Stand By Its Values—Even When It’s Hard?입니다.
저는 제목보다 이 글이 던지는 질문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조직의 가치란 대체 언제 진짜 가치가 될까요?'
매출이 잘 나오고, 여유가 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을 때 가치를 지키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실상 시험대는 정반대의 순간입니다. 원칙을 지키면 돈을 잃고, 일정이 늦어지고, 중요한 고객이 화를 내고, 성과평가에서 손해를 볼 수 있는 때죠.
HBR 아티클은 조직 가치를 우리가 지향하는 것으로만 정의해 온 관행을 뒤집어 봅니다. 무엇을 추구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분명히 해보자는 겁니다. 이번 글 전체를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특히 곱씹어 볼 만하다고 느낀 세 가지를 골라보겠습니다.
가치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HBR 글은 1996년 Johnson & Johnson의 당시 CEO Ralph Larsen이 Jim Collins와 Jerry Porras에게 했던 말을 다시 꺼냅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핵심가치는 경쟁우위를 주기 때문에 갖는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경쟁에서 불리해지더라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HBR 아티클
이 문장을 읽다가 잠시 멈췄습니다. 가치에는 원래 비용이 붙는다는 얘기니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는 설명을 위한 가상 상황입니다.
A기업은 고객 신뢰를 핵심가치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분기 말에 상당한 매출이 걸린 대형 계약이 하나 들어옵니다. 영업팀은 제품의 한계를 고객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계약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묻지 않는 내용까지 굳이 밝히지 않으면 됩니다. 매출을 지킬까요, 신뢰를 지킬까요?
평소에는 둘 다 가능해 보입니다. 압박이 생기는 순간 둘은 갈라집니다. 이때 회사가 신뢰를 중시한다고 다시 강조하는 건 별 쓸모가 없습니다. 이미 구성원은 알고 있잖아요! 진짜 필요한 답은 훨씬 거칠고 구체적입니다.
"매출을 놓치더라도 고객의 판단에 중대한 정보를 감추지 않는다."
이런 문장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 가치가 추상명사로만 적혀 있으면 사람마다 자기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성과 압박이 커질수록 해석의 폭은 더 넓어지고요. 혁신을 위해 이번 한 번만, 고객을 위해 일단 납기를 맞추고, 회사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핵심가치를 정할 때 이런 질문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손해까지 감수할 것인가?"
답을 못 한다면 아직 가치라기보다 희망사항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뉴스레터에서 공유가치로서 헌법과 조직의 핵심가치를 쓰며 핵심가치를 조직의 헌법에 빗댄 적이 있습니다. 헌법 역시 마음에 드는 문구를 모아 놓은 선언문이 아닙니다. 다수의 편의나 순간의 이익으로도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정하는 장치입니다. 조직의 핵심가치도 비슷합니다. 잘할 때보다 어려울 때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조직문화는 말보다 예외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짚을 게 있습니다. 가치를 어겼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입니다. 벽에는 고객 중심이라고 써 있는데 최고 실적자가 고객을 기만해도 매출 때문에 넘어갑니다. 존중을 강조하면서 핵심 인재의 폭언은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눈감아 줍니다. 안전을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일정이 급해지면 절차를 슬그머니 생략합니다. 구성원이 배우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벽에 적힌 문구가 아닙니다.
봐주는 행동이 진짜 가치입니다.
이 부분은 조직행동 연구와도 이어집니다. Mayer, Aquino, Greenbaum, Kuenzi(2012)는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서 조직 내 여러 계층의 ethical leadership과 ethical culture가 구성원의 윤리적 인식과 행동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폈습니다. 특히 직속 리더가 무엇을 말하느냐뿐 아니라 조직 수준에서 어떤 규범과 행동이 실제로 강화되는지가 함께 작동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사람은 슬로건보다 보상과 처벌을 더 빨리 읽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역시 가상 사례입니다.
B회사의 핵심가치 중 하나가 협업입니다. 한 임원이 자기 조직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다른 부서에 비용과 업무를 떠넘깁니다. 전사적으로는 손해지만 자기 사업부 실적은 좋아집니다. 연말에 그 임원이 높은 평가와 승진을 받습니다. 그 순간 협업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폐기됩니다. 구성원에게는 훨씬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되거든요.
자기 숫자만 맞추면 된다.
저는 조직문화를 진단할 때 핵심가치 문구보다 예외 사례부터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원칙을 어겼을 때 회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어디까지 허용했는지, 중요한 고객 앞에서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보면 실제 문화가 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기업들은 핵심가치를 정할 때 꽤 많은 시간을 씁니다. 워크숍을 하고, 단어를 고르고, 정의를 붙이고, 멋진 문구를 만듭니다. 그런데 막상 그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의 의사결정 규칙은 거의 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 중심과 수익성이 충돌하면 어느 쪽을 우선할지, 속도와 안전이 맞부딪치면 누가 중단시킬 수 있는지, 성과와 존중이 충돌하면 최고성과자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지 말입니다. 여기가 비어 있습니다.
하지 않을 일을 먼저 적어보세요
그럼 현장에서는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요? HBR 글은 조직 가치의 힘을 refusal, 즉 거부의 관점에서 살펴볼 것을 제안합니다. 저는 이 아이디어가 꽤 실용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가치마다 장황한 금지 목록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세 단계면 충분합니다.
- 핵심가치마다 손해를 감수해도 하지 않을 행동을 1~2개 적으세요.
예를 들어 정직이라면 계약을 따내기 위해 고객의 판단에 중대한 정보를 숨기지 않는다. 존중이라면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공개적 모욕과 인격적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전이라면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필수 안전 절차를 생략하지 않는다고 씁니다.
- 그 행동을 누가 중단시킬 수 있는지 정하세요.
경계선을 정해 놓고 멈출 권한이 없다면 현장에서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생산라인을 누가 세울 수 있는지, 계약을 누가 보류할 수 있는지, 부당한 지시를 누구에게 올릴 수 있는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 원칙을 지킨 사람에게 생긴 손해를 조직이 떠안으세요.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계약을 포기한 영업사원에게 왜 숫자를 못 맞췄느냐고 다그치고, 안전 때문에 일정을 늦춘 팀장에게 일정 관리 실패라고 평가하면 다음부터 아무도 원칙을 지키지 않습니다.
세 번째가 빠지면 앞의 두 개는 금세 무너집니다. 가치를 지킨 대가를 개인에게 독박 씌우면서 조직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경영진의 역할이 큽니다.
PS. 최근 어느 중소기업을 만났는데, 성과평가에 실적이 없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역량 중 특히 태도에 대한 부분만을 평가한다고 하더군요. '참, 이러기 쉽지 않는데...'하면서 들었습니다. 결과는 CEO가 책임지고, 직원들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관점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