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바닐라 라떼 시키면 바리스타가 펌프를 꾹꾹 누르는 그 시럽, 다들 보셨을 겁니다. 그 시럽 만드는 회사 이야기입니다. 이름은 토라니(Torani), 캘리포니아 샌리안드로에 있는 101년 된 회사인데요. 창업 이래 정리해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대공황도, 2008년도, 코로나도 다 통과하면서요. 저는 기사 제목만 보고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회사가 작아서 자를 일 자체가 없었던 거 아닌가? 아니면 성장이 멈춘 채로 조용히 버틴 케이스 아닌가? 둘 다 아니더군요. 같이 보시죠!
9명이던 회사가 8억 달러가 되는 동안
멜라니 둘베코 CEO가 이 회사에 합류한 건 1991년입니다. 그때 직원이 9명, 연매출이 70만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500명에 올해 매출 8억 달러 이상을 내다봅니다. 35년 평균 연 20% 성장. 시럽 종류도 5개에서 150개 넘게 늘었고요. 그러니까 자를 일이 없어서 안 자른 게 아니라, 성장하는 내내 안 자른 겁니다 (@Fortune).
재밌는 건 1992년 일화입니다. 스타벅스가 자기네 PB 시럽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는데 거절했다고 하죠. 물량으로 보면 언감생심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텐데요. 품질을 지키겠다는 이유였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살짝 웃었습니다. 그 결정 회의에 배석한 영업 담당자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서요 ^^)
토라니의 뿌리는 1925년 이탈리아 이민자 부부, 리날도와 에질다 토레입니다. 대공황 와중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여성이 사업체를 이끄는 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힘들던 시절에 아내가 회사를 붙들고 갔습니다. 대공황을 사람 자르지 않고 넘긴 첫 기록이 여기서 나왔고요. 둘베코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를 궁리하는 겁니다."
(@HRDive)
말은 근사한데, 실무는 이런 식입니다. 2020년에 공장을 옮길 때 직원들 우편번호를 전부 찍어봤답니다. 새 위치가 통근 가능한 자리인지 확인하려고요. 이전 한 번에 조용히 이탈하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회사만 할 수 있는 계산이죠. 이 대목에서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나더군요. 2020년 회사가 광화문에서 잠실로 이전했거든요. 덕분에 통근시간이 3시간 넘게 됐는데 회사는 아무런 고려가 없더라고요. 대표와 임원들 집은 묘하게 강남 인근이었습니다.
정작 반전은 AI 대목에서 나옵니다
여기부터가 이번 호의 본론입니다. 둘베코 CEO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재무를 먼저 보고, 사람을 도구로 둡니다. 우리는 그걸 반대로 봅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어느 회사 홈페이지에나 있을 법한 문장입니다. 저도 이런 문장은 웬만하면 그냥 넘깁니다(껍데기만 남은 인재제일 슬로건, 다들 하나쯤 보셨잖아요).
그런데 AI 얘기로 넘어가면 결이 달라집니다. 이 회사가 AI를 검토할 때 던지는 질문은 몇 명을 줄일 수 있나가 아니라, 이 500명이 무엇을 더 해낼 수 있나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벌어지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해고 이력이 없으니 구성원이 새 기술을 겁 없이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파일럿을 잘게 쪼개 돌리고, 그 업무의 당사자를 개선 과정에 끌어들이니 저항이 붙을 자리가 없다는 거죠.
숫자를 얹어보면 이 대비가 더 선명해집니다. ManpowerGroup의 2026년 조사를 보면 AI를 정기적으로 쓰는 노동자는 45%로 늘었는데,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18% 떨어졌습니다. 43%가 2년 안에 자동화가 내 일을 대체할까 걱정한다고 답했고요. 그러면서 64%는 지금 회사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불안한데 못 떠나는 것, 요즘 말로 잡 허깅(job hugging)이죠 (@ManpowerGroup 2026 Global Talent Barometer).
쓰다 보니 이게 핵심 같습니다. AI 도입이 안 굴러가는 이유를 우리는 대개 교육 부족이나 툴 문제로 진단하는데요. 정작 발목을 잡는 건 이 기술이 내 자리를 겨누고 있다는 계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 AI 저항은 기술 이슈가 아니라 신뢰 이슈일 수 있습니다. 툴 교육을 세 번 돌려도 안 되면, 질문을 바꿔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우리 팀원들은 이 도구가 자기 자리를 대체할 거라고 보고 있을까요? 그 답을 모르는 채로 네 번째 교육을 잡는 건 좀 아깝습니다.
- 약속은 못 해도 질문은 바꿀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고용을 보장할 권한이 없죠. 다만 도입 회의의 첫 질문을 몇 명을 줄일까에서 이 인원으로 뭘 더 할까로 옮기는 건 오늘 당장 가능합니다. 회의실 안 사람들이 그 차이를 제일 먼저 감지합니다.
- 파일럿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넣으세요. 토라니가 쓰는 방식이 딱 이겁니다. 당사자를 관찰 대상이 아니라 설계자로 앉히는 것. 자기가 손댄 도구를 걷어차는 사람은 드뭅니다.
물론 모든 회사가 무해고를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감축을 집행해야 하는 국면도 있고요. 그때 리더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는 예전에 한 번 다뤘습니다. 지금리더 <인력감축을 앞둔 리더에게>를 같이 놓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회사에는 커리어 믹솔로지(career mixology)라는 이름의 내부 이동 제도가 있습니다. 창고에서 고객서비스로, 다시 재무로 옮겨 다니는 식이죠. 회사가 4년마다 두 배씩 커지니 자리가 계속 새로 생기는 덕이겠습니다만, 순서를 뒤집어 보면 안 자르기로 했으니 옮길 자리를 찾아낸 것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에서 가장 오래 걸린 건 성장률도 매출도 아니었습니다. 해고를 안 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이력이 쌓이면 조직이 변화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는 대목이었습니다. 101년은 못 따라가겠지만, 다음 미팅의 첫 질문 하나는 오늘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