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CEO 알버트 불라는 최근 How Pfizer Thinks About AI에서 회사의 AI 운영 원리를 공개했습니다. 177년 치 실험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AI를 현업에 분산시키며, 전 세계 모든 직무에 맞춰 교육한다는 내용입니다. 숫자부터 ㅎㄷㄷ합니다. 대상 구성원의 98%가 이미 첫 기초 과정을 이수했다고 하니까요.
“AI adoption is one thing — nearly every company has done it — but transformation is something else entirely.”
AI를 도입하는 일과 회사를 바꾸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흔한 선언 같지만, 화이자가 해온 일을 놓고 보면 꽤 구체적입니다. AI 전환을 모델 선정이 아니라 데이터, 의사결정권, 직무 숙련의 재배치로 다루고 있거든요. 제가 주목한 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중앙은 기반을 쥐고 현업은 일을 다시 짭니다
화이자는 중앙집중과 현장 자율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중앙 조직은 플랫폼·데이터·컴퓨팅 파워·클라우드 같은 공통 기반을 제공하고, 각 사업과 기능의 리더는 자기 팀의 일하는 방식을 바꿀 책임을 집니다. 이른바 연합형(federated) 모델입니다. 도구는 중앙에서 받되, 업무는 현장에서 뜯어고치는 거죠.
그 바닥에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화이자는 약 10년 동안 1849년부터 쌓인 실험 데이터를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실패한 분자 실험도 버리지 않습니다. 성공만 보고서에 남기지 않고 실패까지 학습 자산으로 붙드는 겁니다. 모델은 경쟁사도 살 수 있지만 맥락이 담긴 조직의 데이터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곱씹을 만합니다.
그 결과가 한 개의 만능 챗봇으로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2024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화이자는 항암 신약 후보 탐색에 OncoScout를 쓰고, 제품의 약 절반에는 AI·머신러닝 수요 예측을 적용했습니다. 임상 연구 문서의 첫 초안 작성 시간은 40%, 전체 투고 일정은 15% 줄였다고 보고했고요. 임상시험 대상자 탐색, 공급 부족 예측, 광고 타기팅처럼 서로 다른 병목에 각기 다른 장치를 얹었습니다.
마케팅 플랫폼 Charlie도 흥미롭습니다. Digiday의 취재를 보면 Charlie는 승인된 화이자 콘텐츠를 근거로 초안을 쓰고 사실관계와 법무 검토 위험을 빨강·노랑·초록으로 구분합니다. 여러 번 승인된 문구와 새로운 의학적 주장을 같은 깊이로 들여다보지 않도록 검토자의 시선을 배분하는 겁니다. 생성 속도만 높인 게 아닙니다. 검토 흐름을 다시 짰습니다.
2026년 6월 공개된 MIT Sloan Management Review 사례의 제목은 아예 화이자 제조 전환에서 어려웠던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입니다. 공장과 디지털팀 사이의 신뢰, 절차와 협업을 다시 세운 일이 성패를 갈랐다는 내용입니다. 기술팀이 현장에 솔루션을 던지고 사용률을 독촉했다면 나오기 힘든 결론이죠.
Lebovitz·Lifshitz-Assaf·Levina(2022)가 Organization Science에 발표한 의료 진단에서 전문가가 불투명한 AI를 다루는 방식도 같은 대목을 짚습니다. 미국 대형 병원의 세 진료과를 살폈더니, AI 결과를 최종 판단에 일관되게 반영한 진료과는 한 곳뿐이었습니다. 그곳의 전문가들은 AI 답을 곧이곧대로 받지 않고 자신의 의학 지식과 대조하며, 왜 판단이 갈렸는지 캐묻는 AI 검증 관행을 갖고 있었습니다. AI 접근권만 준다고 협업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예) 국내 제약사 A사의 임상개발팀이 보고서 초안 도구를 도입한다고 해보죠. 중앙 AI팀은 보안 환경과 모델, 접근 권한을 맡습니다. 임상팀장은 초안의 어떤 문장을 원자료와 대조할지, 수치·이상 반응·인과 표현 가운데 무엇을 고위험 항목으로 볼지, 최종 서명자는 누구인지 정합니다. 한 달 뒤에는 로그인 수가 아니라 초안 소요 시간, 수정 횟수, 근거 누락 건수를 비교합니다. 이게 현업의 몫입니다. 중앙집중형 인프라, 분산형 업무 전환. 화이자의 첫 번째 수는 여기입니다.
둘째, 교육을 복지가 아니라 운영 인프라로 둡니다
화이자는 전 직원에게 자유롭게 써보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AI 유창성을 키우는 조직에 따르면 AI Fluency Development Goal을 연간 성과 지표와 나란히 놓인 전사 개발 목표로 두고, Pfizer AI Academy에서 직급과 직무별 교육·인증을 제공합니다. CEO도 같은 기초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2025년 두 번째 AI Festival은 7개국에서 54개 세션으로 진행됐고요.
여기서 유창성은 프롬프트 묘기 자랑이 아닙니다. 언제 AI에 맡기고, 어디서 사람이 끼어들며, 어떤 근거를 확인해야 하는지 몸에 익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화이자는 임상, 제조, 영업, 마케팅의 위험과 쓸모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사 공통 교육이 문을 열고 직무별 실습이 업무를 바꾸는 구조입니다.
Jia·Luo·Fang·Liao(2024)가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AI는 언제, 어떻게 구성원의 창의성을 높이는가는 교육의 함정을 보여줍니다. 텔레마케팅 회사의 현장 실험에서 AI가 영업 후보 발굴을 맡자, 구성원은 이후 고객 질문에 더 창의적으로 대응했고 판매도 늘었습니다. 다만 이 효과는 숙련도가 높은 구성원에게 훨씬 컸습니다. 숙련도가 낮은 구성원은 스크립트를 거의 발전시키지 못했고 부정적 감정도 겪었습니다. 같은 도구가 격차를 걷어내기는커녕 벌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98% 이수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교육 직후 팀장은 모두 AI를 썼는지 점검할 게 아니라, 숙련도가 낮은 동료가 결과의 흠을 찾아낼 수 있도록 좋은 산출물과 나쁜 산출물을 나란히 놓고 판별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초보자에게는 검증표와 동료 리뷰를 더 촘촘히 붙이고, 숙련자에게는 새 활용법을 시험할 여지를 넓혀야 하고요.
문화도 받쳐줘야 합니다. 지난 호 AI 활용했다고 얘기하는 분위기인가요?에서 살펴봤듯 AI 사용 사실을 공개하는 일이 낮은 노력과 주도성으로 해석되면 구성원은 사용 사실부터 숨깁니다. 그런 조직에서 유창성 교육은 앞문을 열고 뒷문을 잠그는 모양새가 됩니다. 화이자처럼 CEO가 먼저 같은 과정을 밟는 행동은 사소해 보여도 큰 신호를 줍니다. 다만 교육 참여가 승진 경쟁의 장식품이 되지 않도록, 사용 여부보다 검증과 결과를 평가해야 합니다.
성과 숫자는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화이자는 2024년에 AI 활용 사례가 연간 7억3,500만 달러의 효과를 냈고 2026년 20억 달러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인한 2025 연차보고서의 AI 항목에는 최종 달성액이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향후 2년간 GPU를 1,200개 이상으로 확충하겠다는 계획이 담겼습니다. 투자 확대는 확인되지만 목표 달성 여부는 따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불라 CEO도 아직 AI가 주로 설계한 의약품이 환자 승인을 받은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례를 성공 신화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아직 진행형입니다. 이 사례의 쓸모는 오히려 미완성인 전환을 어떤 순서로 운영하는지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의 리더가 이번 주 바로 옮겨올 네 가지
- AI 과제가 아니라 병목 하나를 고르세요. 보고서 작성, 수요 예측, 고객 응대 중 한 장면을 택하고 현재 소요 시간·재작업·오류를 기준선으로 삼으세요. 90일 뒤 같은 숫자로 비교해야 합니다.
- 중앙과 현업의 의사결정권을 한 장에 나누세요. 중앙은 승인 도구, 데이터 보안, 공통 가드레일을 맡고 현업 리더는 업무 순서, 사람의 개입 지점, 최종 책임자를 정합니다. 둘 사이가 흐리면 중앙은 헬프데스크가 되고 현장은 각자도생으로 흐릅니다.
- 수료율 다음에 판별력을 재세요. 교육 후 실제 산출물 세 건을 놓고 오류 찾기, 근거 추적, 수정 이유 설명을 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을 잘 생성하는 능력보다 틀린 답을 붙잡아내는 능력이 고위험 업무에서는 더 절실합니다.
- 절약한 시간을 어디에 쓸지 먼저 약속하세요. 임상 문서 초안이 40% 빨라졌다면 남은 시간을 과학적 검토, 환자 모집, 실험 설계 중 어디에 돌릴지 정하세요. 시간이 줄었다는 이유로 곧장 인원부터 걷어내면 구성원은 개선안을 내놓지 않습니다.
화이자의 AI 전환은 화려한 도구 목록보다 운영의 기본기를 보여줍니다. 데이터는 오래 다듬고, 권한은 현장 가까이 보내며, 학습과 검증은 전 직원의 일로 만드는 것. 결국 AI 전환의 속도는 모델이 아니라 리더가 일을 다시 그리는 속도에서 갈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