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느 제조기업 경영진 대상 워크숍에서 있었던 장면 하나로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쉬는 시간에 상무님 한 분이 제 곁으로 오셔서 슬그머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코치님, 우리도 이참에 조직의 허리 쪽을 덜어낼까 싶습니다. 요즘 AX 조직이 대세라던데요... 팀장 자리 절반은 이제 AI가 하지 않겠어요?"
눈빛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처럼 확신에 차 있었죠. 솔직히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트렌드가 하나 뜨면, 그 트렌드가 진짜 무엇을 약속하는지 따져보기도 전에 조직도부터 손대는 국면을 왕왕 봐왔거든요. ;;; 그래서 오늘은 요즘 부쩍 회자되는 팀장님 부장님 없는 조직 AX 조직이 온다는 이야기를,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뜯어보려 합니다. 정말 허리를 걷어내면 조직은 빨라질까요? 같이 짚어보시죠!
AX 조직은 현실 이야기입니다
먼저 이게 근거 없는 호들갑이 아니라는 것부터 인정하고 갑시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꼽은 AX(AI Transformation, AI 전환) 조직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직급 위주의 고정된 뼈대는 더 이상 맞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모였다 흩어지는 팀이 표준이 된다는 것. GS칼텍스 미디어허브의 정리를 보면, 마케팅이 코드를 만지고 개발팀이 기획안을 다듬는 교차 협업이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 현실은요... 이같은 '역할 조직'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것입니다. 권한과 책임을 1/N로 가질 수 있는 조직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조직들 중 이렇게 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요? 기존의 위계 조직을 역할 조직으로 바꿀 용기(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숫자도 이 흐름을 받쳐줍니다. @FastCompany 보도에 따르면 2022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미국 상장사의 관리자 수는 6.1% 줄었습니다. 구글은 관리자의 약 3분의 1을, 에스티로더는 관리 인력의 20%가량을 걷어냈고요. 아마존은 2025년 한 해에만 1만 4천 개의 사무직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서구에서는 여기에 대평탄화(The Great Flattening)라는 이름까지 붙었죠.
▷▷▶ 현실은요... 미국의 최근 해고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너무 많이 뽑은 인력을 정리하는 면이 큽니다. 그래서 AI 왁싱이라는 비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곧바로 짚고 갈 대목이 있습니다. 아마존이 그 감원의 명분으로 내세운 건 AI 효율이었습니다. 실상 이 걷어냄이 정말 AI 전환에서 비롯된 결과인지, 아니면 원래 하고 싶던 비용 절감을 AX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한 것인지는 냉정하게 갈라 봐야 합니다. 유행은 왕왕 알리바이가 되기 마련이거든요.
▷▷▶ 현실은요... DX 한다고 요란하던 그룹사에서 왜 인력 감축 또는 조직 개편 얘기는 잘 들리지 않았을까요?
걷어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통념은 이렇습니다. 중간관리자는 위아래로 보고서나 나르는 잉여이니, 그 층을 걷어내면 조직이 날렵해진다. 저는 여기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걷어낸 뒤의 모양새를 들여다보면 그림이 영 딴판이라서요.
사실 이 대목은 지난달 이 지면에서 정면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지금리더 — 조직 대평탄화에 대한 반론). 그때 붙든 핵심은 병목의 이동이었습니다. 계층을 덜어내면 결재가 빨라질 것 같지만, 중간에서 걸러지고 조율되던 판단이 고스란히 소수의 팀장과 임원에게 몰리면서 의사결정은 되레 늘어집니다. 갤럽이 짚었듯 구성원은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을 때 몰입하는데, 얼굴 마주할 짬조차 없는 관리자가 그 피드백을 건넬 재간은 없습니다. 층은 지웠으되 그 층이 감당하던 몫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더 비싼 인력 위에 슬그머니 얹히는 모양새인 거죠.
경영학은 이 질문을 오래전에 다뤘습니다. Wooldridge, Schmid, Floyd 세 학자가 2008년 Journal of Management에 발표한 리뷰 논문은, 지난 사반세기의 전략 연구를 종합해 이렇게 결론 냅니다. 중간관리자는 전략의 실행자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 흩어진 정보를 종합해 위로 새로운 전략 대안을 제안하는 상향 영향력의 원천이라는 겁니다. 최고경영진의 의도와 실무 현장을 잇는 결절점이자, 조직이 미처 감지 못 한 기회를 먼저 알아채는 더듬이라는 거죠.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AI는 보고·조율·번역이라는 이 층의 겉일은 곧잘 흉내 냅니다. 하지만 현장의 맥락을 읽어 판단으로 벼리는 속일은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겉일이 자동화됐다는 이유로 사람까지 통째로 걷어내면,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던 그 더듬이를 함께 잃습니다. 대평탄화를 겪은 기업에서 직원의 37%가 방향을 잃었다고 답하고, 고위 임원의 절반 가까이가 남은 조직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죠. 얇아진 건 인건비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과거 그 처방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적도 있습니다. 중간관리자가 과부하로 무너져 갈 때, 답은 그 자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역할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요(지금리더 — 중간관리자를 구하라). 통제 범위를 관리자 한 사람당 6~8명으로 좁히고, 실적과 육성 목표를 갈라 분담시키고, 휴가·연봉 조정 같은 실권을 쥐여주자는 이야기였죠. 그때의 처방은 걷어내기가 아니라 받쳐주기였습니다.
▷▷▶ 현실은요... 중간관리자들을 만나면 권한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정말 권한을 원할까요? 권한과 책임은 콤보입니다. 책임도 늘어난다는 걸 감안해도 그들이 추가적인 권한을 요구할까요? 역할 조직으로 전환은 위계 조직보다 더 빡세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AX라는 새 이름을 달고 허리부터 덜어내려는 지금의 흐름은, 바로 그 처방과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힘에 부친 중간관리자를 구하자던 논의가, 반년 사이에 그를 지워도 되는 근거로 뒤집혀 돌아온 모양새랄까요.
자동화만 밀어붙이면 조직은 스스로를 갉아먹습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봅시다. AX 조직을 향한 열광에는 은근한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AI가 사람 일을 넘겨받으니(자동화), 사람은 그만큼 빠지면 된다는 셈법이죠. 이 전제 자체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Raisch와 Krakowski가 2021년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실은 연구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두 사람은 자동화(automation, 기계가 일을 넘겨받음)와 증강(augmentation, 사람이 기계와 긴밀히 협업함)이 실은 떼어놓을 수 없는 역설적 짝이라고 봅니다. 자동화만 밀어붙이면 당장은 효율이 오르는 듯해도, 판단·검증·맥락 보완을 맡던 사람의 역량이 서서히 위축되고, 종국에는 그 자동화를 감독하고 고쳐 쓸 주체마저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겁니다. 반대로 사람의 증강 역할을 살려두면 자동화도 오래 굴러가고요. 둘 중 하나만 고르는 게임이 아니라는 거죠.
▷▷▶ 현실은요... 지금 워크플로우 개선 과정은 업무를 쪼개서 AI가 할일, 사람이 할일도 나누는데만 혈안입니다. 두 가지를 나누는 것 못지 않게 정기적으로 리뷰를 통해서 정말 그 구분이 효율적인지 검토하고 보완해야 합니다.
이 논문을 요즘의 AX 담론 위에 겹쳐 놓으면 위태로운 대목이 드러납니다. 시중에서 회자되는 AX 조직은 대개 자동화의 얼굴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걷어낼지는 요란하게 말하면서, 사람의 증강을 어디에 어떻게 남길지는 좀처럼 말하지 않죠. GS칼텍스 자료가 강조한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곧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근거를 점검하고 맥락을 보태 다시 쓰는 검증자의 자리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비워둔 채 허리부터 덜어내면, 남은 조직은 속도를 얻는 대신 방향타를 잃습니다.
▷▷▶ 현실은요... 휴먼 온 더 루프가 되고 있습니다. 자동화 프로세스나 에이전트가 물을 때 Stop을 누르고 보는 사람은 솔직히 거의 없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여 건강한 마찰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유행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진단은 여기까지. 이제 조직을 설계하는 리더 여러분, 특히 B 상무님처럼 조직도에 손대려는 임원 여러분께 다섯 가지를 권해드립니다.
- 걷어내기 전에 무엇을 남길지부터 정하세요. 자동화할 겉일과, 사람만 벼릴 수 있는 판단·감지의 속일을 종이 한 장에 갈라 적어보세요. 이 목록 없이 조직도부터 그리면, 지우지 말았어야 할 더듬이를 함께 지웁니다.
- 증강의 판을 먼저 깔고 자동화를 얹으세요. 순서가 뒤바뀌면 악순환에 빠집니다. AI에 일을 넘기기 전에, 그 결과를 누가 검증하고 맥락을 보탤지부터 설계하시길 권합니다.
- 검증 루프에 주인을 세우세요. 휴먼 인 더 루프는 구호가 아니라 자리입니다. AI 산출물을 승인만 하는 도장 찍는 역할이 아니라, 근거가 어디서 왔고 우리 현장에서 어디가 어긋나는지 가려내 고쳐 쓰는 책임자를 명시적으로 지정하세요.
- 설계 기준을 계층의 수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범위로 옮기세요. 조직을 얇게 만들수록, 이 일이 왜 중요한지를 반복해 확인시켜 줄 사람이 되레 더 필요해집니다. 한 관리자가 의미 있는 피드백을 건네고 결정을 받쳐줄 수 있는 적정 범위부터 먼저 그으세요. 방향을 잃은 37%를 방치하면, 사람들은 기능이 아니라 의미를 사고, 의미에 삽니다. 이건 알고리즘이 대신 못 하는 몫이고요.
- 유행을 곧이곧대로 옮겨심지 마세요. 옆 회사가 20%를 걷어냈다는 소식이 우리 회사의 처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현장의 맥락에서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독박이 될지, 매섭게 저울질하고 우리 판을 새로 짜시길 바랍니다.
워크숍이 끝날 무렵, B 상무님께 이렇게 답했습니다. 허리를 걷어내는 게 전환은 아니라고, 걷어낸 자리에 무엇을 남길지 설계하지 못하면 그건 그냥 감원일 뿐이라고요.
조직은 단순할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역할이 또렷할수록 강해집니다. AX 조직은 유행입니다. 유행을 좇을지 말지가 아니라, 그 유행이 약속하는 게 진짜 우리에게 쓸모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 — 결국 이게 리더의 책무가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