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반환점을 돈 7월입니다. 상반기 성과를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는 어떤 리더인가'를 되짚게 되죠. 그런데 이 질문 앞에서 의외로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건, 닮고 싶은 롤모델이 아니라 정반대의 얼굴입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름만 들어도 명치가 답답해지는 그 상사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한 명쯤 있으실 겁니다. 금요일 밤 11시에 아무렇지 않게 카톡을 보내던 팀장, 회의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던 임원, 잘된 건 자기 공, 안된 건 다 아랫사람 탓으로 돌리던 그 선배요. 떠올리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요(ㅜㅜ). 그런데 참 얄궂게도, 수백만 원짜리 리더십 과정에서 배운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그 사람 밑에서 몸으로 익힌 교훈은 몇 년이 지나도 선명합니다.
오늘은 바로 이 역설을 파보려 합니다. 최악의 상사를, 돈 한 푼 안 드는 최고의 자기교육 교재로 바꾸는 법. 다만 여기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구분선이 하나 있습니다. 함께 모색해보시죠!
왜 교육 내용보다 나쁜 상사가 더 오래 남을까
먼저 인정할 게 하나 있습니다. 리더십은 강의실에서 잘 안 배워집니다. 저희가 예전에 리더십 교육훈련이 망하는 이유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요. 핵심은 이랬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참여'가 아니라 실무에서의 '행동 변화'여야 하고, 사람은 적당히 불편할 때 비로소 배운다는 것. 편안한 강의실에선 고개만 끄덕이다 끝나기 쉽거든요.
그럼 나쁜 상사 밑에서의 하루하루는 어떨까요? 그건 매일이 불편함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실전'이라는 점에서 강의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Forbes에 실린 브라이언 로빈슨의 최근 기고 3 Steps To Turn Your Worst Boss Into Your Greatest Teacher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성장은 좀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나오지 않는다고요. 기고에 등장하는 미군 지휘관 존 하월의 회고가 인상적이더군요. 신참 시절 상관이 서류 양식의 사소한 형식을 두고 그를 몰아세웠는데, 당시엔 지독하다 싶었지만 훗날 자신이 리더가 되고 나서야 그 디테일의 값어치를 깨달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나쁜 상사도 다 약이 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교훈을 얻는 것과 그 상처를 미화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고통을 낭만화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치른 그 값비싼 대가에서 뽑아낼 수 있는 교훈만큼은 한 톨도 남김없이 회수하는 것. 결국 이게 핵심입니다.
'요구가 많은 상사' vs. '파괴적인 상사'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구분선이 나옵니다. 다 같은 '나쁜 상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엔 두 종류의 힘든 상사가 있습니다. '요구가 많은'(demanding) 상사와 '파괴적인'(destructive) 상사. 이 둘을 뭉뚱그리면 배울 것도 놓치고, 참지 말아야 할 것도 참게 됩니다.
요구가 많은 상사는 기준이 높습니다.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고, "이게 최선이냐"고 자꾸 되묻죠. 그 밑에 있으면 피곤합니다. 하지만 그가 겨누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일의 수준'입니다. 반면 파괴적인 상사는 겨냥점이 다릅니다. 겨누는 대상이 일이 아니라 사람이거든요. 모욕하고, 조종하고, 인격을 깎아내립니다.
(예) A 팀장 밑의 두 신입을 떠올려 볼까요. 한 명은 늘 "숫자 근거가 부족하다"며 보고서를 세 번씩 반려당했습니다. 당시엔 야근에 머리가 터질 것 같더군요. 그런데 3년 뒤, 그는 데이터로 말하는 습관 덕에 어디서든 신뢰받는 실무자가 됐습니다. 반면 다른 신입은 매번 "이런 것도 못 하냐,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반려당한 건 똑같은데, 그에게 남은 건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었죠. 앞의 상사는 기준을 물려줬고, 뒤의 상사는 상처를 물려준 겁니다.
그러면 이 둘을 어떻게 가릴까요? 저는 이렇게 권해드립니다. 질책이 끝난 뒤 남는 게 무엇인지 보시라는 겁니다. 요구가 많은 상사와의 대화 뒤엔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가 손에 남습니다. 파괴적인 상사와의 대화 뒤엔 '나라는 사람이 문제'라는 감정만 남고요. 로빈슨의 기고에 나온 한 장면이 이 구분을 잘 보여줍니다. 하월이 급하지 않은 주말 통화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을 때, 그 까다로운 지휘관은 오히려 그 경계를 존중해줬다는 겁니다. 건강한 경계선이 되레 존중을 부른 거죠. 파괴적인 상사라면 그 거절을 '괘씸죄'로 되갚았을 테고요. 결국 좋은 기준과 나쁜 인격은, 사람의 경계선 앞에서 갈립니다.
최악의 경험을 '나만의 안티-교재'로 바꾸는 3단계
구분이 섰다면, 이제 회수할 차례입니다. 로빈슨이 제시한 세 단계를, 우리 실정에 맞게 다시 풀어보겠습니다.
첫째, '불편함을 통한 학습'을 인정하는 겁니다. 모든 교훈이 따뜻한 포장지에 싸여 오지는 않습니다. 요구가 많았던 상사에게선 기준과 책임을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의 말투는 버리되, 그가 고집했던 '일의 수준'만큼은 내 것으로 가져오는 거죠. 당시엔 유난스럽다 싶던 디테일이, 내가 그 자리에 서보면 왜 그랬는지 보이기 마련입니다.
둘째, 파괴적인 상사에게선 정반대의 것을 배웁니다. 바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입니다. 이걸 저는 '안티-롤모델' 학습이라 부르는데요. 흥미롭게도 관리자 성장을 다룬 연구들을 보면, 사람은 여러 긍정적 본보기와 더불어 최소 한 명의 '부정적 본보기'에게서도 배운다고 합니다. 좋은 본보기가 '이렇게 하라'를 가르친다면, 나쁜 본보기는 '이렇게는 되지 말자'를 가르치는 거죠. 그러니 그 상사가 준 상처를 그냥 삭이지 마시고, 문장으로 남기시길 권합니다.
(예) "회의에서 사람 이름 대며 망신 주지 않기", "나쁜 소식은 절대 카톡으로 통보하지 않기", "실패했을 때 원인부터 묻고 사람부터 탓하지 않기". 이렇게 적어둔 목록은, 그 어떤 리더십 워크숍 교재보다 구체적이고 나에게 꼭 맞는 지침이 됩니다.
셋째, 원한은 내려놓는 겁니다. 이게 셋 중 가장 어렵죠. 하지만 로빈슨의 지적은 아프도록 현실적입니다. 원한을 붙들고 있으면, 정작 성장에 써야 할 에너지가 그 미움을 유지하는 데 다 소진된다는 겁니다. 하월은 그 지휘관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그를 병으로 떠나보낸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하고요. 오해는 마세요. 원한을 내려놓으라는 건, 그 사람의 잘못을 없던 일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배울 걸 다 챙긴 다음, 그 무거운 감정만 내가 짊어지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앞서 본 슌스와 실링의 메타분석이 말해주듯 파괴적 리더십의 대가는 이미 충분히 치렀습니다. 거기에 몇 년 치 원망까지 얹어 나까지 나를 괴롭힐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지금 그 상사가 여전히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 이 3단계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요(그럴 땐 회수보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이미 지난 일이 됐다면, 언제까지고 피해자의 자리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 경험의 소유권을 내가 되찾는 순간, 최악의 상사는 비로소 나를 가르친 스승이 되니까요.
마무리
돌아보면 우리를 키운 건 잘 짜인 커리큘럼이 아니라, 그 커리큘럼이 차마 담지 못한 현장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최악의 상사도 그중 하나고요. 다만 그 경험이 흉터로 남을지 교재로 남을지는, 결국 내가 무엇을 회수하고 무엇을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하반기엔,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했던 그 이름에서 딱 한 줄만이라도 건져 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그 한 줄이, 여러분이 물려줄 유산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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