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Adam Grant는 2025년 3월 CNBC 인터뷰에서 "번아웃을 겪을 때는 과부하, 과자극, 압도당함을 느끼지만, 보어아웃을 겪을 때는 과소자극(underwhelmed)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번아웃(Burnout)’ 즉, 과도한 업무로 인한 극심한 피로와 탈진 상태를 조직의 가장 큰 적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을 독려하고, 업무량을 조절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직원들의 동기를 갉아먹고 조직을 병들게 하는 것이 뜨겁게 타버리는 '소진(Burnout)'뿐만 아니라, 차갑게 식어버리는 '권태(Bore-out)'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주목할 주제는 바로 '보어아웃 증후군(Bore-out Syndrome)'입니다. 자신의 역량에 한참 못 미치는 단조로운 업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의 반복 속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권태감과 무기력증. 얼핏 보면 '일이 편해서 좋겠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보어아웃은 번아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교묘하게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생산성을 파괴하는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1. '보어아웃'이란 무엇인가: 조용한 좀비가 되어가는 직원들
보어아웃은 스위스의 컨설턴트 페터 베르더와 필리프 로틀린이 2007년 자신들의 저서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루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①업무에 대한 흥미 부족, ②도전 의식 부재, ③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가 결합되어 만성적인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이어지는 심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보어아웃에 빠진 직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바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개인적인 웹 서핑을 하거나, 간단한 업무를 일부러 천천히 처리하며 바쁜 척 연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업무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며, 회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이른바 '오피스 좀비(Office Zombie)'가 되어갑니다.
문제는 리더들이 이 상태를 알아차리기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번아웃이 탈진, 잦은 병가 등 눈에 띄는 신호를 보내는 반면, 보어아웃은 매우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됩니다. 당사자 역시 "일이 없어서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며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 왜 지금 '보어아웃'이 위험한가?
최근 보어아웃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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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와 업무 효율화의 역설: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가 자동화되었습니다. 이는 효율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일부 직원들의 업무를 극도로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역할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보어아웃을 더욱 가속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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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분업화와 전문화: 조직이 커지고 업무가 세분화될수록 직원들은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에 불과하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전체적인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업무의 의미를 잃고 권태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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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정체와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특히 연차가 쌓인 중간 관리자나 시니어 실무자들 중에는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이나 성장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매일 비슷한 관리 업무만 반복하며 '커리어 천장'에 부딪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유능한 인재가 무력감에 빠져 조직을 떠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3. 우리 조직의 '보어아웃'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리더의 역할
보어아웃은 개인의 나태함이 아닌, '잘못된 직무 설계'와 '리더의 관리 부재'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의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 재설계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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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진단과 대화 (Challenge & Meaning): 가장 먼저 할 일은 직원들과의 솔직한 1:1 면담입니다. "요즘 하는 일은 재미있나요?", "업무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직원의 현재 상태를 진단해야 합니다. 단순히 업무 강도(‘힘들지 않은지’)를 묻는 것을 넘어, **업무의 도전 수준(Challenge)**과 **의미(Meaning)**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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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직무 재설계 (Job Crafting): 모든 직원을 위해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직무를 더 의미 있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직원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과업을 추가하거나, 업무 방식을 개선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을 유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인 보고서 작성 업무를 하는 직원에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역할을 추가로 부여하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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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성장 기회 제공 (Growth Opportunity): 단기적인 성과와 무관하더라도 직원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부서와 협업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이는 당장의 권태감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조직 전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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