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Work-Life Balance) 잘 챙기고 계신가요?”
이 질문은 지난 몇 년간 직장인의 안부를 묻는 대표적인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담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 낡은 프레임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우리가 오해했던 워라밸의 함정을 스필오버(Spillover, 전이 효과)와 크로스오버(Crossover, 교차 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고, 일과 삶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시너지(Synergy)’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기계적 균형’이라는 착각, ‘스필오버’를 간과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워라밸은 일과 개인의 삶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두고 수평을 맞추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과 삶이 분리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착각에 기인하며,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필오버(Spillover, 전이 효과)’를 완전히 무시하는 관점입니다.
스필오버란, 한 영역에서의 경험과 감정이 다른 영역으로 ‘흘러넘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
부정적 스필오버 (Negative Spillover): 사용자의 지적처럼,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출근한 직원이 완벽한 평온 속에서 업무에 몰입하기 어려운 것이 대표적입니다. 회사에서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퇴근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가정으로 흘러넘쳐, 무기력감이나 예민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
긍정적 스필오버 (Positive Spillover): 반대로, 직장에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치고 얻은 성취감과 자신감은 가정생활에도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일터에서 동료들과 나눈 긍정적인 에너지는 퇴근 후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일과 삶은 분리된 저울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수도관과 같습니다. 한쪽의 수질과 수압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기계적 5:5 균형’이라는 낡은 목표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무시하고, 부정적 스필오버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함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2️⃣ 나를 넘어 우리에게로, ‘크로스오버’ 효과
스필오버가 한 개인 안에서 일과 삶이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라면, ‘크로스오버(Crossover, 교차 효과)’는 이 영향력이 타인에게까지 ‘전염’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부정적 스필오버)를 가정으로 가져와 배우자에게 짜증을 낸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감정 상태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크로스오버입니다. 나의 일터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이 배우자의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긍정적 크로스오버도 존재합니다. 내가 일에서 얻은 만족감과 활력은 배우자나 자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달되어 가정 전체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일과 삶은 개인의 경계를 넘어 가족과 주변인에게까지 파급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기업이 구성원의 긍정적 경험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직원에게 베푸는 복지가 아니라, 그 직원과 연결된 가정과 사회 전체에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하는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3️⃣ ‘긍정적 스필오버 & 크로스오버’를 설계하는 기업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워라밸, 즉 ‘일과 삶의 시너지’는 의도적으로 ‘긍정적 스필오버와 크로스오버’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의 움직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일·생활 균형 우수기업’ 사례집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과감하게 도입한 ㈜그레이드헬스체인은 2023년 이후 이직률 0%를 달성했습니다. 직원들이 자신의 생활 리듬을 존중받으며 일하자 긍정적 감정이 업무 몰입으로 ‘스필오버’되었고, 이는 다시 높은 만족감과 낮은 이직률이라는 조직 성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 SAP의 휴가 구매 제도나 쿠팡의 반려동물 휴가, 카카오의 정신건강 프로그램 등은 모두 구성원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함으로써 부정적 스필오버의 원인을 줄이고, 긍정적 경험이 일터로 흘러들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구성원 개인의 행복을 넘어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긍정적 에너지가 ‘크로스오버’되도록 돕는 현명한 투자입니다.
4️⃣ 시너지를 위한 우리의 역할: 긍정적 효과의 시작점이 되기
일과 삶의 긍정적 시너지를 만들기 위한 리더와 구성원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
리더: 팀원의 삶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이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스필오버),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해야 합니다. 팀원 한 명의 긍정적 경험이 팀 전체, 나아가 그의 가정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크로스오버)는 사실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긍정적 경험을 설계해야 합니다.
-
구성원: ‘회사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일을 통해 얻은 긍정적 에너지를 삶으로, 삶에서 얻은 영감을 다시 일로 가져오는’ 긍정적 스필오버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감정과 태도가 동료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크로스오버) 인식하고, 긍정적 영향력을 전파하는 선순환의 시작점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균형’이라는 낡은 저울을 내려놓을 때입니다. 나의 일과 삶이 어떻게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흘러넘치고(Spillover), 그 에너지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따뜻하게 번져나갈지(Crossover)를 고민하는 새로운 차원의 워라밸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관련 뉴스레터: 당신이 생각하는 워라밸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