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덜 교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언급하며, 놀랍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의 발언을 요약합니다.
한국 방문 소감은?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일어선 모습에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장면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빛의 혁명’입니다. 수백만 명이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장면은 앞으로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
한국 폭력 사태와 미 의사당 폭동의 공통점은?
두 사건 모두 소수 집단이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불평등과 소외, 분노가 결합하면서 이런 정치적 반발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가 불만과 모욕에 휘둘릴 때 극단주의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주류 정당, 특히 중도좌파는 대학 학위가 없는 청년 남성들이 겪는 소외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주의는 왜 위험한가?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의 격차를 심화시키며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승자는 자신의 성공을 전적으로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며 오만해지고, 패자는 존엄을 잃고 무시당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가 폭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능력주의를 제어하지 못하면?
고등교육이 선별 기계로 기능하면 탈락자는 존중받지 못하고, 승자조차 과도한 경쟁 압박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건강성을 위협합니다.
공동선의 의미는?
공동선은 시민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정의되는 개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계층이 어울릴 수 있는 공공 공간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공동선 논쟁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첫걸음은 시민사회 기반시설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공립학교, 공원, 도서관, 문화센터 같은 공간이 확대돼야 하고, 언론과 교육은 존중과 이성적 토론을 장려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반 구축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가장 큰 어려움은 공적 자금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특히 부유층이 이런 공공시설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느끼지 못하면 지원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자와 서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인 노동자와 한국 청년 남성의 유사점은?
이들은 엘리트에게 무시당하고 소외된다고 느낍니다. 중도좌파 정당이 오랫동안 노동자 계층을 외면해온 결과, 이런 집단이 우파 포퓰리즘에 끌리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경제적 접근과 문화적 접근 중 더 중요한 것은?
저는 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함께 작용합니다. 분배적 정의와 더불어 노동의 존엄을 강조하는 기여적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샌덜 교수는 공리주의자의 주장처럼 느껴집니다. '소수'의 능력주의, 극우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임에도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PC(정치적 올바름)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엘리트 계층의 탈대중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