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주 4.5일제 근무를 시범적으로 수행하는 어느 조직의 리더를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구성원들이 기대감도 있지만, 문제 없이 시행했을 경우 '너네 일이 별로 없구나!'라고 비난받을까, 문제가 많으면서 시행됐을 경우 '너네 의지가 없구나!'라고 비난 받을까 걱정한다고 했습니다. 글쎄요. 단순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죠. 어떻게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서 줄어든 시간 안에 성과를 내는가가 핵심 아닐까요? 최근 유럽에서 법제화가 확산되고 있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울리는 업무 메시지 알림, 혹시 당연하게 여기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많은 조직이 '성과 중심'과 '책임감'을 강조하며 암묵적으로 '상시 연결(always-on)' 문화를 용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러한 문화가 개인의 삶과 조직의 생산성을 모두 파괴하는 주범이라 보고, 이를 법과 제도로 막으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프랑스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The Right to Disconnect)' 라는 중요한 흐름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과를 위한 리더십의 새로운 책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프랑스에서 EU까지,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어떻게 확산되었나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2017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법제화되었습니다. 50인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업무 시간 외 이메일이나 메시지 사용을 제한하는 규칙을 노사 간에 협의하도록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이 법안은 디지털 시대의 번아웃 문제를 해결할 핵심적인 장치로 인정받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유럽연합(EU) 의회 또한 이를 회원국 전체에 적용되는 기본 권리로 격상시키기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며,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더 이상 일부 국가의 독특한 정책이 아닌 유럽의 표준(Standard)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팬데믹 이후 정착된 하이브리드 근무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공식 통계 기구인 유로파운드(Eurofoun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 근무자의 약 3분의 1이 정기적으로 업무 시간 외에 일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경계가 사라지면서 일과 삶의 경계도 함께 무너졌고, 이것이 구성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리더의 새로운 책무: '경계의 수호자(Boundary Keeper)'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조직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열쇠는 정책이나 툴이 아닌, 리더의 행동과 메시지에 달려있습니다. 리더가 업무 시간 외에 습관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빠른 회신을 기대한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미래의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 중 하나로 '경계의 수호자(Boundary Keeper)' 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팀원들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소극적 역할을 넘어, 팀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적극적인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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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에도 '근무 시간'을 설정하라: 리더 스스로가 업무 시간 외 연락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예약 발송' 기능을 활용해, 메시지가 다음 날 업무 시간에 전달되도록 설정하는 것은 팀원들의 휴식 시간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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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라: 모든 메시지에 '긴급' 딱지를 붙이는 것은 팀 전체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정말로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일과, 다음 날 처리해도 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여 소통해야 합니다. 이는 리더의 업무 우선순위 설정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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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기 협업(Asynchronous Collaboration)을 설계하라: 팀원들이 각자 다른 시간에 접속하더라도 업무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응답이 없으면 일이 마비되는 구조가 아니라, 공유 문서와 프로젝트 관리 툴을 통해 각자의 편한 시간에 업무를 처리하고 현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워크플로우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잘 끊어내는 조직이 더 큰 성과를 만든다
일각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긴급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시킬 것이라 우려합니다. 하지만 유럽 기업들의 사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영국의 4일 근무제 실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근무 시간 단축과 함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 기업들에서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은 71% 감소한 반면, 기업의 매출은 평균 1.4% 증가했습니다.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보장될 때, 구성원들은 업무 시간에 더 높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 것입니다.
결국,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단순히 '쉬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과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낡은 공식을 깨고,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Time-spent)'가 아닌 '무엇을 해냈는가(Output-driven)'로 조직의 생산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