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한 대기업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영진이 '혁신적 사고와 전문성을 갖춘 탁월한 리더'라고 소개한 DX 부문 신임 본부장이 1년 후 리더십 서베이에서 최하위권에 위치한 것입니다. 같은 인물을 두고 경영진과 실무진의 평가가 정반대로 나타난 이 사건은 우리가 가진 네 번째 리더십 착각을 보여줍니다. 바로 '위대한 리더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는 믿음 말입니다.
합의라는 달콤한 환상
리더십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미국 대통령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997년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의 설문에서 링컨, 워싱턴, 루즈벨트가 상위권을 차지했고, 이후 여러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치 '위대한 리더'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2011년 정치학자 우신스키와 사이먼이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달랐습니다. 민주당 성향 응답자들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공화당 성향 응답자들은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초기 조사의 응답자들이 모두 명문대 역사학과 교수라는 매우 동질적인 집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합의'라는 것이 사실은 특정 집단의 편향된 시각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링컨은 생전에는 극도로 분열적인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서는 폭군으로, 북부 일부에서는 독재자로 비난받았죠. 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기 시작한 것은 암살 이후 수십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2017년 스테펜스 등의 연구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리더를 살아있는 리더보다 더 카리스마 있고 위대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와 상황이 만드는 다른 기준
2006년 자비단 등의 GLOBE 프로젝트는 문화권별 리더십 인식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아시아 문화에서는 명확한 지시와 권위적 태도가 '강한 리더십'으로 인식되지만, 평등을 중시하는 북유럽 문화에서는 같은 행동이 '독재적'이라고 비판받습니다.
국내 다국적 기업의 한국인 관리자가 서울 본사에서는 '세부 사항에 너무 집착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인도 법인으로 발령받은 후에는 '체계적이고 사려 깊은 관리자'라는 평가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 한국에서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인도에서는 '코칭형 리더십'으로 해석된 것입니다.
세대 간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50대 임원들은 리더 평가 시 '전략적 사고력(30%)', '결단력(25%)', '성과 달성력(20%)'을 중시했지만, 30대 직원들은 '소통 능력(35%)', '팀원 배려(25%)', '공정성(20%)'을 우선시했습니다.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
2024년 하버드 비즈니스 퍼블리싱의 연구에서 리더십 개발 전문가 70%가 "리더들이 더 넓은 범위의 리더십 행동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기존의 '완벽한 리더'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맥킨지와 딜로이트의 최근 연구들도 다양한 리더십 팀을 가진 조직이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따라서 HR 담당자들과 리더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완벽한 리더'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별 맞춤형 평가 시스템, 문화적 지능 개발,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수렴하는 다면 평가 혁신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의 미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영웅'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적절하게 기여하는 다원적 리더십'에 달려 있습니다. 정해진 합의의 착각에서 벗어나 맥락의 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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