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한 기억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어제 10시 40분경 지인의 카톡을 통해 처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짜 뉴스가 아닌가 싶었지만 뉴스 속보를 보고 사실임을 알았습니다. 내 생애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와이프는 감기로 일찍 잠에 들었고, 깨어있던 아들에게만 얘기하고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12시쯤 여의도 국회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3~4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정문, 국회 도서관 등 3곳 정도로 인원이 나눴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8~9백 명 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한 개 차선은 통행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결국 도로 전체를 점유하게 됐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경찰의 태도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진압하거나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시위대와 시비가 붙었지만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내가 알고 있던 1979년 계엄 사태가 맞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군인들이 온다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장갑차를 필두로 특수부대원을 실은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시민들은 그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차문을 막고 내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경찰들과 비슷하게 강제적인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몇몇의 눈빛을 보니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늘에서 헬기가 왔다갔다하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우리가 여길 막아도 저 놈들이 하늘로 들어가면 끝장 아닌가?' 싶어서였습니다.
다행히 계엄 선포 해제 가결 소식이 들려와서 사람들은 큰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제 됐다'는 안도감과 '아직 끝난 건 아니다'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다 너무 서글퍼졌습니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짓인지 말입니다.
얼마 안 있어 장갑차가 회군했습니다. 경찰들도 대형을 해산했습니다. 저는 대략 두 시가 넘어서 귀가했습니다. 오고 가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1. 정치는 생활이다
여의도로 향하는 길에 택시 기사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는데, 화가 나셨더군요. 특히나 계엄 상황에서 통금이 되면 수입이 줄까 걱정하셨습니다. 이 분께는 직접적인 민생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정치를 공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삶과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2. 시스템은 살아있다
계엄 선포를 국회가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은 철저하게 민주화의 산물입니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계엄 선포를 통제할 장치를 둔 것이죠. 당연히 87년 체제가 만든 귀한 장치입니다. 이상한 사람이 리더가 되도 전체 시스템을 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시스템의 역할입니다.
#3. 납득되지 않으면 행동할 수 없다
왜 경찰이, 군인이 혼란스런 상황이었을까? 단순히 준비가 부족해서 그랬을까? 뉴스를 보니 '북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설명을 하고 국회로 투입됐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영화 <서울의 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4. 시민들의 참여
많은 시민들이 야밤에 속속 모였습니다. 국회 앞 뿐만 아니라 다리 건너까지 1, 2 차선은 시민들이 타고온 차량으로 가득했습니다. 다들 질서를 지키며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군인을 설득한 것도 시민의 몫이었습니다.
#5. 고령화의 안타까움
시민들의 상당수가 나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 축에 들어가죠. 구호 몇 번 외치고 나니 힘이 쭉 빠지더군요. 그래도 군인들 설득에 주효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이지만 그걸 다시 회복한 것 역시 우리입니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민주주의가 넘치는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