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타운홀 원고를 쓰다 보면 많은 임원이 비슷한 대목에서 막힙니다. 실적과 계획은 금방 채우는데(쉽지 않지만요) 직원 마음에 닿을 한 단락은 비어 있죠. 요즘 그 자리에 가장 자주 들어가는 것이 리더 자신의 '실패담'입니다. 취약성을 드러내라는 조언이 리더십 교육의 상식이 됐으니 그럴 만합니다. 그런데 이번 달 나온 실험 연구를 보면 고백에 관해 우리가 믿어 온 내용 상당 부분이 반쪽짜리입니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다섯 가지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근거가 된 연구부터 소개합니다. 에사데 경영대학원의 나므라타 고얄(Namrata Goyal), 홍콩폴리텍대의 크리슈나 사바니(Krishna Savani) 등 연구자 네 명이 Research: When Being Authentic Undermines Your Leadership(@HBR, 2026.10.12)에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실험 10개에 참가자 2,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리더가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진정성 있어 보이고 지지를 얻는지 비교했습니다.
오해 1. 아팠던 좌절을 털어놓으면 진정성이 올라간다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리더가 힘들었던 시절이나 무너졌던 순간을 솔직하게 꺼내면 직원들이 그 사람을 진짜로 느낀다고요.
실험 결과는 달랐습니다. 좌절만 털어놓은 고백은 동정을 샀지만 진정성 평가는 거의 올리지 못했습니다. 듣는 사람은 "힘드셨겠다"에서 멈춥니다. 동정과 진정성은 서로 다른 계좌에 쌓이는 셈이죠. 저는 이 대목이 가장 뜨끔했습니다. 리더 워크숍에서 실패 경험 나누기를 얼마나 당연한 순서로 여겨 왔나 싶어서요. 현업 시절 워크숍 서두에서 나의 잘못을 먼저 고백하던 저의 모습에 낯이 뜨거워 집니다. ;;;
(예) 가상의 장면입니다. B 전무가 타운홀에서 작년 신사업이 엎어진 뒤 몇 달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털어놓습니다. 객석은 숙연해지고 박수도 나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직원들이 나누는 말은 "전무님도 고생 많으셨네" 정도입니다. B 전무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움직이는 사람인지는 그 고백에 거의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해 2. 진정성은 약점을 드러내는 데서 나온다
취약성과 진정성을 한데 묶어 보는 시각입니다.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 줄수록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공식이죠. 연구진의 첫 번째 조언은 이 둘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성 평가와 지지를 끌어올린 고백은 개인적 대가를 치르며 내린 비관습적 선택, 곧 주체성(agency)을 드러낸 고백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당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골랐느냐가 진정성의 신호였죠. 학계의 진정성 리더십 개념도 원래 이쪽에 가깝습니다. 가드너(Gardner)·아볼리오(Avolio) 등이 2005년 The Leadership Quarterly에 발표한 연구 Can you see the real me?는 진정성 있는 리더를 자기 인식과 자기 조절을 바탕으로 자기 가치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그립니다. 진정성의 무게중심은 상처보다 가치에 따른 행동에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
(예) 역시 가상의 장면입니다. C 상무가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 본사 기획 자리를 두고 신사업 TF에 자원했습니다. 그 바람에 승진이 2년 늦었습니다. 그래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눈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이 사람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내려놨는지가 드러납니다. 직원들이 오래 기억하는 말은 이런 쪽이라고 저는 봅니다.
오해 3. 높은 사람일수록 약점을 보여야 거리가 좁혀진다
임원이 먼저 내려놓으면 위계의 벽이 낮아진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경계하라는 연구는 전부터 있었습니다. 깁슨(Gibson)·하라리(Harari)·마(Marr)가 2018년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발표한 When sharing hurts는 참가자 762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세 번 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상대에게 약점을 털어놓자 상대가 보는 그의 지위가 낮아졌고, 영향력도 줄었습니다. 과업 갈등은 늘었고 관계의 질은 나빠졌습니다. 같은 고백을 동료끼리 했을 때는 이런 손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털어놓은 사람은 가까워졌다고 느껴도 듣는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고얄 연구에는 반대 방향의 결과가 있습니다. 주체성을 드러낸 고백은 이미 자리를 잡은 리더가 했을 때 효과가 더 컸습니다. 두 연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지위가 확성기처럼 작동한다고 저는 읽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약점 고백으로 잃는 몫도, 대가를 치른 선택을 고백해 얻는 몫도 커집니다(두 연구를 엮은 제 해석입니다). 그렇다고 약점을 꼭꼭 숨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약점만 꺼내 놓고 단상을 내려오면 확성기는 그 약점을 키웁니다.
오해 4. 신임 리더일수록 솔직한 고백으로 빨리 신뢰를 얻어야 한다
새로 온 리더가 첫 회의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벽이 빨리 허물어진다는 조언, 다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겁니다.
연구진의 세 번째 조언은 정반대입니다. 관습에서 벗어난 선택을 내보이기 전에 신뢰부터 쌓으라고 합니다. 자리를 잡은 리더에게서 효과가 컸다는 결과와 같은 방향입니다. 쓰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라 조심스럽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고 말하면 소신보다 튀는 행동으로 들리기 쉬워서가 아닐까 합니다. 같은 행동도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팔로워 앞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는 가짜 리더십: 위대한 리더는 특정한 행동을 한다에서도 다뤘습니다. 고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학계 안에서도 꾸준히 나옵니다.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Tomas Chamorro-Premuzic)는 When Authentic Leadership Backfires(@HBR, 2025)에서 진정성이 자존감과 웰빙에는 도움이 되지만 유능한 리더로 보이는 것과는 별개라고 짚었습니다. 그가 낸 책 제목은 아예 Don't Be Yourself입니다. 진정성 열풍에 대놓고 찬물을 끼얹는 제목이죠. 사실 저도 '진정성'이란 말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독재자 히틀러도 무척이나 진정성 넘긴 인간 아니었을까요? ^^;
오해 5. 남과 다른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라면 다 통한다
주체성이 답이라면 파격적인 결정 이야기는 뭐든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연구에서 착취적인 선택을 드러낸 고백은 신뢰를 갉아먹었습니다. 신뢰를 얻느냐 잃느냐는 대가를 누가 치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 자신이 승진이나 연봉, 안락함을 내려놓았다면 주체성의 고백이 됩니다. 그 대가를 직원이나 고객이 치렀다면 자기 자랑에 가깝습니다.
(예) 가상의 D 본부장이 무용담을 꺼냅니다. "다들 안 된다고 할 때 밀어붙였습니다. 석 달 내내 주말에 출근시켜서 결국 해냈죠." 본인에게는 소신의 증거겠지만, 그 석 달을 버틴 직원들에게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관습을 벗어난 선택이었던 건 맞습니다. 다만 그 비용을 엉뚱한 사람들이 치렀습니다.
연말 메시지 원고에 대 볼 질문
고백이 진정성 있게 들리느냐는 얼마나 아팠느냐보다 무엇을 택했고 그 대가를 누가 치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타운홀이나 신년 메시지 원고를 다듬으실 때 아래 질문을 하나씩 대 보시면 어떨까요.
- 고백 대목에 '그래서 나는 무엇을 택했나'가 들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실패담을 지우라는 게 아니라 실패 뒤에 내린 선택까지 이어서 말하라는 뜻입니다.
- 그 선택의 대가를 누가 치렀는지 한 줄로 적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 줄에 직원이 먼저 나온다면 그 일화는 빼는 편이 낫습니다.
- 부임한 지 얼마 안 됐다면 파격적인 결정 이야기보다 약속을 지킨 기록을 먼저 쌓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확성기는 신뢰가 쌓인 뒤에 켜도 늦지 않습니다.
- 원고를 다 쓰면 직원 한두 명에게 먼저 읽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털어놓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느끼는 온도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직원들이 리더에게 듣고 싶은 것은 상처의 크기보다 선택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 원고에는 눈물 대신 결정 하나를 담아 보시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