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쓰는 앨리슨 그린이 지난 9월 21일 Slate에 흥미로운 글을 냈습니다.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대략 이렇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걸 요구하라고 가르쳐 놓고, 그대로 일터에 보냈다. 편하게 일하세요라는 한마디를 두고 신입과 리더, 옆자리 동료가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거죠. 같이 보시죠!
담요 둥지와 촛불 사무실
그린의 칼럼은 요즘 직장이 예전 같으면 눈총받았을 행동을 꽤 너그럽게 받아준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집중하려고 손에 쥐는 피젯 토이, 헤드폰, 회의 중에 일어나 서성이기 같은 것들이죠. 저는 이 변화가 반갑습니다.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은 애초에 근거가 빈약했으니까요. 다만 그린이 모아 놓은 사례를 뜯어보면 선이 어디쯤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흔적이 보입니다. 앞서 말한 담요 둥지가 하나고,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 사무실을 캄캄하게 만들다가 급기야 촛불까지 켠 신입의 박쥐 동굴 사무실이 또 하나입니다. 이 방은 끝내 방문객에게서 저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과는 약속을 못 잡겠다는 항의까지 받았다고 하네요. ㅋ 고객을 맞는 자리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고집하는 직원, 고객 전화는 안 받고 이메일로만 응대하겠다는 젊은 팀원들 사례도 이어집니다.
같은 말, 세 개의 귀
'똑같이 편하게 일하세요'를 들었는데 왜 이렇게 엇갈릴까요? 듣는 자리마다 붙는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먼저 신입의 귀입니다. 그린은 원인 한 갈래를 학교에서 찾습니다. 미국 학교는 개별화교육계획(IEP)이나 504 플랜 같은 제도로 학생마다 맞는 지원을 찾아주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 왔습니다. 시험 시간을 더 주거나 조용한 공간을 내주는 식이죠. 학교의 책무가 학생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니 옳은 방향입니다. 그 경험을 몸에 익힌 신입에게 편하게 일하라는 말은 필요한 걸 말하면 맞춰준다는 뜻으로 들리기 마련이고요. 까다롭게 군 게 아니라 배운 대로 한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가장 오래 걸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요즘 신입은이라고 혀를 차는 장면 상당수가 실은 이 번역 오류일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한국도 비슷할 듯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가정에서 충분히 존중 받는게 일상이 되었잖아요.
리더의 귀에는 늘 괄호가 붙어 있습니다. (일에 지장 없고, 팀에 폐 안 끼치고, 고객 눈에 이상하지 않은 선에서.) 문제는 이 괄호를 한 번도 소리 내어 읽어준 적이 없다는 점이죠. 말 안 해도 알겠거니 믿는 건 리더의 오랜 버릇(?)입니다.
동료와 고객은 목소리가 가장 작은 쪽입니다. 전화를 안 받는 팀원이 있으면 그 전화는 결국 누군가 대신 받습니다. 그린이 짚은 문장을 그대로 옮깁니다.
"You're part of a team, you have responsibilities to other people." (당신은 팀의 일원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둘 다 틀린 말은 안 했습니다. 서로의 괄호를 못 봤을 뿐이죠.
세대 탓은 잠시 미뤄두고
담요 둥지나 촛불 사무실 얘기를 들으면 요즘 세대는, 하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지난 7월 세대를 관리하려다 없던 갈등을 만든다에서 소개한 연구를 다시 꺼내 보죠. Ravid, Costanza, Romero(2025)가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에 실은 메타분석인데, 직무만족·조직몰입·이직의도 어디에서도 세대 간 일관된 격차를 찾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의 결론은 짧습니다.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 호에서 MZ 소통 가이드북을 돌렸던 A 팀장이 20대 사원에게 들은 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저 그냥 일 잘하고 싶은데… 왜 저를 'MZ'로만 보세요?"
담요 둥지도 세대로 읽으면 설명이 쉬워 보이지만, 실상은 학교에서 익힌 규칙과 회사가 말하지 않은 규칙이 엇박자를 낸 장면에 가깝습니다. 세대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대화는 닫히고 없던 갈등만 남습니다.
그린의 처방은 담백합니다. 자율을 넓힐수록 경계도 또렷하게 말해주라는 겁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연락이 닿아야 하는지, 메시지엔 얼마 안에 답해야 하는지, 어떤 날은 반드시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요. 소통이 잘 안되면 그냥 치워 두는 리더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 괄호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팀장 개인의 취향으로 채우면 곤란합니다. 작년 3월 원칙 있는 소통의 시작은 이것!에서 드린 말씀을 한 번 더 가져오겠습니다.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나 마찰이 있을 때 리더가 내밀 수 있는 기준은 핵심 가치뿐이라는 얘기였죠. 헤드폰을 빼 달라는 요청도 팀장님 눈에 거슬려서가 아니라 고객이 언제든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에서 나온다면,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이 전혀 다릅니다. 그 글에서 던진 질문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핵심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때가 언제냐는 물음이었는데, 답은 면접 전날이었죠. 입사하고 나면 슬그머니 잊히는 가치로는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 편하게 뒤에 숨은 괄호를 꺼내 보시면 어떨까요. 응답 시간,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 고객 앞에서의 장비와 복장처럼 팀마다 양보할 수 없는 두세 가지만 먼저 적어 보는 겁니다. 각 항목 옆에는 그 선이 어느 핵심 가치에서 나왔는지도 한 줄씩 달아 두시고요. 나머지는 정말로 편하게 두셔도 됩니다.
- 안 된다고 할 땐 이유와 대안을 같이 건네 보세요. 헤드폰이 싫어서가 아니라 고객이 말을 걸기 어려워서라고 말해주는 식입니다. 담요 둥지 사연에도 편한 의자, 스탠딩 데스크, 조명을 바꿔 보는 타협안이 답으로 나왔습니다. 거절보다 조율에 가까운 대화죠.
- 신입을 탓하기 전에 온보딩 안내문부터 다시 읽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거기에 편하게 일하세요 한 줄만 달랑 있다면, 선을 넘은 게 아니라 애초에 선이 없었던 겁니다.
편함은 선이 보일 때 비로소 편합니다.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누리는 자유는 은근히 눈치 보이는 자유니까요. 이번 주에는 우리 팀의 괄호를 한번 소리 내어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담요 둥지 허용 여부는 각 팀 사정에 맡기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