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를 업무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지 3~4년 차로 접어든 2026년 9월 오늘, 여러분 팀의 하루 풍경은 어떻습니까?
매킨지(@McKinsey)가 2026년 9월 7일 발표한 아티클 The human skills at a premium in the age of AI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고유의 역량에 되레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는 역설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제 조직의 패러다임이 인재에서 가치로(Talent to Value) 가던 흐름을 넘어, 인재와 AI 에이전트에서 가치로(Talent and Agents to Value) 전환되었다고 선언하더군요.
리포트 전문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리더십과 현장 업무 설계 관점에서 우리 리더들이 뼈아프게 곱씹어야 할 대목 4가지를 선별해 보았습니다. 화려한 신기술 소개보다 현장의 피로를 덜어내는 실마리가 간절한 요즘이니까요. ^^; 제 생각과 현장 코멘트도 함께 붙여 봅니다. 😎
1. 단순 작업의 증발과 판단의 독박
매킨지 리포트가 가장 먼저 강조한 인간의 핵심 역량은 바로 비판적 사고와 판단(Judgment and Critical Thinking)입니다.
- AI는 초안 작성, 데이터 수집, 기초 분석, 뼈대 잡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함
- 그러나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고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여전히 기계의 몫이 아님
- 결국 조직 안에서 무엇을 해야 마땅한가(should do)를 결정하는 책임은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귀결됨
(의견) 이 대목을 읽으며 문득 최근 만난 A 제조업 팀장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팀원들에게 AI 툴을 쥐여주면 칼퇴근할 줄 알았는데, 다들 퇴근 무렵이면 뇌가 녹아내린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전에는 보고서 하나를 쓸 때 시장 조사도 하고, 엑셀 칸도 채우고, 폰트 크기를 맞추는 자잘한 손작업이 일의 70%를 차지했습니다. 그런 손작업은 몸은 좀 피곤할지언정, 고도의 뇌 에너지를 쥐어짜는 일은 아니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잘한 일은 AI가 1분 만에 뚝딱 해치웁니다. 그 대신 구성원 책상 위에는 하루 종일 이 방향이 과연 타당한가, 경쟁사의 반격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실패했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같은 무거운 판단만 100% 농축되어 떨어집니다. 쉬운 일은 AI가 쏙 빼가고, 머리가 깨질 듯한 고난도 결단만 남은 셈입니다. (쓰다 보니 저 역시 마감 직전에 AI가 뽑아준 목차를 보며 결정을 내릴 때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더군요.)
예전에 발행했던 [지금리더] AI 생산성 이면의 진실: 심리적 부채에서도 짚었듯, 기술이 주는 속도 뒤에는 인지 부채와 자율성 부채라는 무거운 청구서가 슬그머니 숨어 있습니다. 판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많은 포도당을 태우는 고강도 노동입니다. 일의 부피가 줄었다고 해서 일의 무게까지 가벼워진 건 결코 아닙니다.
2. 검증의 늪과 인지적 고밀도화
매킨지는 두 번째 프리미엄 역량으로 맥락적 이해(Contextual Understanding)를 제시합니다.
-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엮어내지만, 조직의 미묘한 사내 정치나 암묵지, 감정적 맥락을 헤아리지 못함
- AI가 그럴듯하게 내놓은 결과물(Hallucination 위험 포함)을 사실 확인하고 오류를 걸러내는 검증 비용이 급증함
- 기계의 산출물을 현실 맥락에 맞게 번역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결국 사람임
(의견) 저는 이 대목에서 늘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많은 경영진이 AI가 5분 만에 기획서 초안을 뽑아내는 광경에 감탄하지만, 실무 현장의 진실은 딴판입니다. 백지에서 새로 글을 쓰는 고통보다 남이 그럴듯하게 써놓은 글에서 교묘한 거짓말과 숫자의 오류를 샅샅이 찾아내는 일이 정신적으로 서너 배는 더 피곤합니다. 기획서 안에 교묘하게 숨은 엉터리 레퍼런스를 하나하나 검색해 검증하다 보면,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쓰는 게 낫겠다는 자조가 절로 터져 나오지요. (실제로 모 IT 기업의 B 파트장은 검증하다 눈알이 빠질 뻔했다며 한숨을 푹 쉬더군요.)
일의 밀도가 지나치게 빽빽해졌습니다. 숨 쉴 틈 없이 오류를 잡고 결함을 색출해야 하는 긴장 상태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모양새입니다. 항공 분야에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자동화의 역설(Paradox of Automation)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있습니다. 비행기에 고도화된 자동항법장치를 달아주었더니 평상시 조종사의 피로는 줄었지만, 기상 악화나 센서 오류 같은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대형 사고가 날 확률은 오히려 치솟았다는 관찰입니다. 기계가 평온한 비행을 도맡으면서 조종사는 수동 조종 감각을 잃어버렸고, 기계가 감당하지 못해 툭 뱉어낸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만 조종석의 조종간을 허겁지겁 붙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멍하니 모니터링만 하다가 1초 만에 생사가 걸린 결단을 내려야 하니 뇌가 마비될 수밖에요.
지금 우리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도 이 비행기 조종석과 소름 돋을 만큼 닮아 있지 않습니까? 루틴 업무라는 잔잔한 순항은 AI가 채가고, 구성원 앞에는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해 튕겨 나온 온갖 골치 아픈 예외와 폭탄만 쏟아져 내립니다.
3. 사라진 완충재와 증발한 뇌의 여백
매킨지가 꼽은 세 번째 핵심 역량은 적응력과 회복 탄력성(Adaptability and Resilience)입니다.
- 고정된 정적 프로세스 대신 수시로 조건이 바뀌는 가변적 환경(variable environments)이 일상화됨
- 인간과 AI 에이전트가 끊임없이 합을 맞추는 유동적 워크플로 안에서 인지적 유연성이 성패를 가름
- 변화의 충격을 흡수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복원하는 능력이 지속 가능한 성과의 전제 조건임
(의견) 여기서 우리는 과거의 일하는 방식을 잠시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 사무실 책상 위에서 우리가 하던 일들을 가만히 떠올려보십시오. 회의 준비를 위해 복사기 앞에서 백 장의 유인물을 넘기며 스테이플러를 찍던 15분, 엑셀 서식을 정리하며 숫자를 가지런히 정렬하던 30분, 영수증을 풀칠해 풀잎처럼 붙이던 시간들.
당시에는 비효율의 극치라며 손가락질했던 그 단순 잡무들이, 실상은 우리 뇌에 엄청나게 소중한 인지적 완충재(Cognitive Buffer) 노릇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복사기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잠시 식히고, 자잘한 타자를 치며 다음 회의에서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굴릴 여백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완충재가 완벽하게 걷혀 나갔습니다. AI 덕분에 기획안 초안이 30초 만에 나오고 메일 초안이 3초 만에 뽑힙니다. 여유가 생겼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빈틈이 생기자마자 리더와 조직은 다음 의사결정, 또 다른 프로젝트, 또 다른 검증 작업을 숨 돌릴 틈도 없이 그 자리에 욱여넣습니다. [지금리더] AI 쓰는데 조직 생산성은 그대로?에서 말씀드렸듯, 개별 과업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조직 차원의 프로세스와 사람의 인지 구조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생산성 병목은 반드시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단순 업무가 사라진 자리에 더 무거운 인지적 요구만 켜켜이 쌓아 올렸으니, 뇌가 파업을 선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4. 지시에서 맥락으로: 리더의 역할 변화
매킨지가 리더십 차원에서 가장 무게를 두어 역설한 부분은 바로 지시형 리더십에서 맥락 중심 리더십으로의 전환(From Command to Context)입니다.
- 상명하복식 세부 지시(Command and Control)는 AI 에이전트와 인간이 섞여 일하는 환경에서 작동 불능에 빠짐
- 리더는 일일이 일을 지정해 주기보다 명확한 목표, 판단의 원칙, 의사결정 권한의 경계선(Guardrails)을 세워야 함
- 인간 구성원이 기술적 불안감에 압도되지 않고 역량을 펼치도록 돕는 공감과 신뢰 구축이 리더십의 본령임
(의견) 이 대목이야말로 오늘 우리 팀장님들께 가장 절실하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리자가 여전히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AI가 일을 대신해 주니 우리 팀원들은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겠지?"
그런 안이한 시선으로 팀원들을 바라보면 현장과 리더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의 골이 패입니다. 리더가 해야 할 진짜 숙제는 생산성 지표를 들고 쪼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이 무거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세워주고, 탈진하지 않도록 뇌의 회복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해 주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창한 시스템 개편보다 당장 내일부터 시도해 볼 수 있는 실천 수순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판단의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여 '판단 독박 - 책임 독박'을 걷어내십시오.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결정을 내리는 행위 자체보다, 결정이 틀렸을 때 혼자 뒤집어써야 할 책임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AI가 가져온 결과물 중에서 어디까지는 팀원이 재량껏 승인해도 되는지, 어떤 수준의 예외는 리더와 즉시 상의해야 하는지 명확한 룰을 합의하세요.
"기준 A와 B를 충족했다면 팀원 선에서 바로 발행해도 좋습니다. 만약 빗나가더라도 그건 가이드라인을 세운 제 책임입니다."
이 한마디가 구성원의 어깨를 짓누르는 판단의 하중을 절반 이하로 덜어줍니다.
둘째, 팀원들의 캘린더에 인지적 회복 시간(Recovery Buffer)을 공식적으로 박아두십시오.
일이 빨리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다음 과제를 던지는 방식은 최악의 악수입니다. 집중적인 판단 업무를 마친 뒤에는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 동안 단순 정리 작업을 하거나 동료와 차 한잔을 마시며 뇌를 식힐 수 있는 여백을 공식적으로 허용해야 합니다. 쉬어야 다음 판단이 정교해집니다. (숨도 안 쉬고 운전하면 아무리 좋은 슈퍼카라도 엔진이 타버리는 법이니까요.)
AI는 결코 인간의 일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쉬운 껍데기만 걷어가고 가장 단단하고 소화하기 힘든 알맹이만 우리 앞에 남겨놓았을 뿐입니다.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그 기계를 다루며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의 노동은 훨씬 더 무겁고 외로워졌습니다. 우리 팀원들이 게으르거나 역량이 부족해서 지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난도 판단과 결정을 거듭하느라 뇌의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뿐입니다.
속도라는 숫자에 취해 사람의 뇌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주에는 우리 팀의 일하는 판을 냉정하게 한번 뜯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생산성은 기계가 만들지만, 그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끝내 지치지 않은 사람의 맑은 정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