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조직을 가나 생산성이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립니다. 실적은 빠듯한데 사람은 못 늘리니 남은 카드가 그것뿐이겠지요. 이럴 때 조직이 반복하는 동작이 있습니다.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먼저 '시간'을 건드립니다. 회의를 줄이고, 보고를 줄이고, 캘린더를 정리하고, 시간 관리 교육을 돌립니다. 아낀 시간만큼 성과가 나올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거죠. 오늘은 그 전제를 한번 뒤집어 볼까 합니다.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다뤄야 한다는 얘깁니다.
생산성이 떨어질 때 조직이 늘 하는 세 가지
판단은 잠깐 미루고, 실제로 벌어지는 일부터 담담히 늘어놓겠습니다.
첫째, 회의 다이어트입니다.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자르고, 참석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어젠다 없는 회의는 금지합니다. 어느 제조사는 수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오후와 목요일 오전이 회의로 미어터지더군요.
둘째, 도구 도입입니다. 협업 툴을 깔고, 대시보드를 세우고, 업무 시간을 자동 기록합니다.
셋째, 개인 역량으로 넘기기입니다. 이게 가장 흔합니다. 타임 블로킹 특강, 우선순위 매트릭스, 딥워크 워크숍. 요지는 하나입니다. 각자 알아서 집중력을 관리하시라.
세 가지 모두 틀린 처방은 아닙니다.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그릇의 크기만 만지고, 그 시간에 담기는 사람의 상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숫자가 이미 답을 내놨습니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38개국 중 6~7위 수준입니다. 그런데 2024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로 OECD 31위입니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7년째 30위권에서 못 벗어나고 있고요. (제조업 생산성은 높지만 서비스업 생산성은 낮습니다)
시간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넣는데, 나오는 건 하위권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어보죠. 갤럽의 2024년 국가별 업무 몰입도 조사에서 한국은 13.8%, 105위였습니다. 동아시아 평균 18%에도 못 미칩니다. 몸은 앉아 있는데 마음은 이미 퇴근한 상태라는 뜻이겠지요. 시간을 더 짜내는 방식은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에너지가 놓인 자리입니다
어제 나온 패스트컴퍼니 기사 Stop managing your time. Instead, manage your energy가 이 대목을 정면으로 짚습니다. 부제가 아프더군요. 창의성은 시계에 맞춰 나오지 않는다. 기사가 그리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하루 종일 회의와 개입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창의적인 일을 할 차례가 왔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이미 다른 과제들로 포화 상태고 알림은 계속 울립니다. 시간은 확보됐는데 그 시간을 쓸 사람이 남아 있질 않은 거죠.
카네기멜런대 조직행동 전공 애니타 윌리엄스 울리 교수의 말을 기사가 그대로 옮겼습니다.
"Trying to do demanding, focused work during a period full of interruptions, or when fatigue is already high, is a losing proposition."
(방해가 빼곡한 시간대에, 혹은 이미 피로가 높은 상태에서 고난도 집중 업무를 하려는 건 애초에 지는 싸움입니다.) 지는 싸움. 표현이 참 야박한데 맞는 말입니다.
기사가 인용한 숫자 둘도 곱씹을 만합니다. 시간 기록 도구 레스큐타임 집계로, 직장인이 하루에 확보하는 방해받지 않는 집중 시간은 85분입니다. 여덟 시간 넘게 앉아 있고 85분이요.
그리고 2001년 루빈스타인·마이어·에번스의 과제 전환 연구. 과제를 바꿀 때 드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연구자 마이어는 그 찰나들이 쌓여 생산성을 최대 40%까지 깎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메일 확인, 몰입 중에 끌려나가는 회의. 기사는 이런 걸 에너지 누수라 부르고, 그 대가로 업무 만족도 하락과 팀 문화 훼손을 함께 꼽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캘린더의 빈칸은 자원이 아닙니다. 그 빈칸에 어떤 상태의 뇌가 들어앉느냐가 자원입니다.
리더의 컨디션이 팀 전체의 에너지를 좌우합니다
여기서 방향을 좀 틀어보겠습니다. 원문 기사는 구성원이 자기 크로노타입과 업무량에 맞는 시간대를 스스로 주장하라(advocate)고 권합니다. 미국 매체다운 처방이죠. 하지만 한국 조직에서 그게 될까요.
C 사원이 팀장에게 "저는 오후 3시 이후에 머리가 도니까 오전 회의는 빼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 저는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언감생심이죠. 캘린더에 무엇을 넣고 뺄지 정하는 권한은 대부분 위에 있습니다.
Barnes와 동료들이 2015년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실은 연구입니다. 제목이 유쾌합니다. 나 졸릴 땐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ㅋㅋ
이 연구는 리더의 일일 수면을 추적했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잠의 양이 아니라 질이 갈랐다는 점입니다. 수면의 질이 나빴던 다음 날, 리더는 자아 고갈 상태가 되고, 그 상태에서 부하 직원을 대하는 행동이 거칠어졌으며, 그날 팀의 업무 몰입도가 실제로 떨어졌습니다. 리더 한 사람의 어젯밤이 그날 팀 전체의 몰입 수치로 번진다는 겁니다.
여기서 제 의문 하나. 우리는 리더의 컨디션을 사생활로 분류해왔는데, 이 연구대로면 그건 명백한 조직 변수입니다. (사실 개인적인 부분이 조직에 영향을 주면 리더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이 가장 걸립니다. 새벽까지 자료 만들고 출근하는 팀장을 헌신적이라 부르는 문화가 있죠. 그 헌신의 청구서를 다음 날 팀원들이 나눠 받는 셈입니다.
두 번째는 Volk, Pearsall, Christian, Becker가 2017년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발표한 이론 논문입니다. 팀 에너지 비동기성이라는 개념을 세웠습니다. 사람마다 하루 중 에너지가 솟는 시각이 다릅니다. 이 생체 리듬 성향을 크로노타입이라 부르는데, 팀 안에 크로노타입이 제각각이면 구성원들의 에너지 정점과 저점이 서로 어긋납니다. 논문은 이 어긋남이 팀의 조정, 정보 처리, 서로 받쳐주는 행동에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는 모형을 제시합니다.
실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오전 10시 회의는 아침형에게는 정점이지만 저녁형에게는 아직 시동이 안 걸린 시각입니다. 같은 회의실에 앉아 같은 시간을 쓰는데, 투입되는 에너지는 전혀 다릅니다. 회의록에는 안 남죠.
이 대목은 예전에 다룬 모티베이션에 대한 잘못된 가정 편과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움직일까를 고민하기 전에, 지금 그 사람이 움직일 상태이긴 한지부터 봐야 한다는 얘기니까요.
그래서 캘린더를 쥔 사람이 뭘 하면 될까요
거창한 제도는 필요 없습니다. 판을 조금 바꾸는 쪽입니다.
하나, 팀의 골든타임을 정하고 지켜주세요. 팀원 각자에게 하루 중 머리가 가장 잘 도는 두 시간이 언제인지 물어보십시오. 원온원 때 한 줄이면 됩니다. 겹치는 구간을 찾아 그 시간대엔 회의와 보고를 걸지 않기로 하세요. 캘린더에 못 박아 두시고요. 아, 그리고 팀장님이 그 시간에 슬랙으로 "잠깐만요" 하시면 그날로 끝입니다. ㅜㅜ
둘, 회의를 하루의 어디에 놓을지 다시 보세요. 회의를 줄이는 것보다 어느 시각에 배치하느냐가 더 큽니다. 창의적 논의는 팀의 에너지 정점에, 상태 공유나 진척 확인처럼 머리를 덜 쓰는 회의는 오후 늦게로. 순서만 바꿔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셋, 크로노타입을 성실성의 잣대로 쓰지 마세요. 아침에 일찍 켜지는 사람이 성실한 게 아니라 그 시각에 켜지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녁형 팀원의 오전 리액션이 굼뜬 걸 태도 문제로 읽는 리더가 왕왕 있습니다. 이건 평가가 아니라 오독입니다.
넷, 리더 본인의 회복을 업무로 취급하세요. Sonnentag와 Fritz가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에 정리한 스트레스원-분리 모형의 요지는 간명합니다. 퇴근 후 업무에서 심리적으로 떨어지는 경험이 있어야 다음 날 쓸 자원이 복구된다는 겁니다. 침대에서 메일함 여는 습관, 그거 회복을 갉아먹습니다. 이런 얘기 하는 저도 잘 못 지킵니다만.
다섯, 하루 85분을 기준선으로 삼으세요. 팀원의 실제 집중 시간이 85분보다 짧다면, 업무량이 아니라 방해 구조를 손봐야 할 신호입니다.
레스큐타임이 낸 하루 중 생산성 곡선 자료를 보면 사람들의 집중 정점은 대체로 오전 중반과 늦은 오후 두 군데에 몰립니다. 우리 조직은 하필 그 두 구간에 주간회의와 마감 보고를 얹어두고 있진 않은지요.
마무리
시간 관리는 그릇을 다루는 기술이고, 에너지 관리는 그 안에 담기는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순서가 뒤집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덟 시간을 확보해 드렸는데 85분치 결과가 나온다면,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던 거죠.
😎 한번 생각해보세요!
- 우리 팀의 가장 좋은 두 시간에 지금 무엇이 들어가 있나요?
- 지난주 내 컨디션이 가장 나빴던 날, 팀원들에게 나는 어떤 리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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