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제조 대기업 A 사의 조직개발 담당 임원과 마주 앉을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팀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떠시냐 여쭸더니, 그분이 대뜸 꺼낸 자랑이 이랬습니다.
"저희 팀은 회의가 20분이면 끝납니다. 말 안 해도 서로 다 알거든요."
표정에 뿌듯함이 묻어나더군요. 저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차를 마시며 조금 더 들어보니, 그 팀 여덟 명 중 여섯이 같은 계열사 출신이고, 넷은 같은 학교를 나왔고, 연차 폭은 3년 안쪽이었습니다. 회의가 20분에 끝나는 게 당연했습니다. 애초에 다르게 볼 사람이 방에 없었으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곱씹었습니다. 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 팀을 좋은 팀이라고 부릅니다. 궁합이 맞는다, 케미가 좋다, 눈빛만 봐도 안다. 리더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칭찬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오늘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건드려보려 합니다.
기수에 한 명이 달랐을 뿐인데
바로 어제(2026년 7월 26일) 소개된 연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양한 대학원 환경이 졸업생 초임과 연결된다는 연구인데, 원 논문은 Debanjan Mitra, Peter N. Golder, Mariya Topchy가 Nature에 발표한 것입니다.
규모부터 ㅎㄷㄷ합니다. 미국 경영대학원 141곳의 29년 치 기수 2,964개, 로스쿨 200곳의 21년 치 기수 3,386개. 표준화 시험 점수, 학부 성적, 성비, 학교 명성, 규모, 소재지까지 걷어내고 남은 결과는 이랬습니다. 한 기수에 소수인종 학생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그 기수 전체의 초임 총액이 경영대학원은 약 1만 2,500달러, 로스쿨은 약 3만 달러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핵심을 짚고 갑시다. 이득을 본 쪽이 소수집단 학생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 전부의 몸값이 올라갔습니다. 다수집단 학생까지요. 연구진은 인과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대학에서 완벽한 통제 실험은 불가능하니까요. 다만 시간 순서는 한 방향으로만 흘렀습니다. 입학 시점의 구성이 훗날의 임금을 예측했지, 그 반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깔고 들어가는 전제가 있습니다. 다양성은 배려다, 착한 일이다, 그래서 성과는 조금 양보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그 전제를 뒤집습니다. 다양성은 소수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그 방에 앉은 모두의 학습 조건에 가깝습니다. 물론 미국 대학원의 인종 구성을 한국에 곧이곧대로 옮길 수는 없겠지요. 우리 현장의 동질성은 인종보다 출신 회사, 나온 학교, 걸어온 경로, 연차, 성별에 얹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도 증거가 있습니다.
콩 세기 실험을 다시 꺼내봅니다
예전에 이 레터에서 <코칭은 모르는 사람에게 받으세요>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뼈대로 삼았던 게 서울대 박선현 교수의 콩 세기 실험이었죠. 유리병에 콩을 채워놓고 몇 개인지 맞혀보라는 과제입니다. 정답을 아무도 모릅니다.
방식은 단순합니다. 다섯 명이 한 조로 앉아 3분 간격으로 여섯 차례 추정치를 적습니다. 사이사이 토의를 하고요. 대학생은 같은 전공끼리 묶은 조와 전공이 제각각인 조로 갈랐고, 임원 과정 참가자는 친밀도와 자문 역량을 기준으로 나눴습니다.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같은 전공끼리 앉은 조, 서로 친한 학생들로 채운 조는 토의가 콩 개수라는 알맹이까지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논의는 시들했고, 추정치는 중반을 넘기면서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배경이 흩어진 조는 마지막 회차까지 값을 고쳐나갔습니다.
친밀한 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은형 교수가 칼럼(@중앙일보)에서 짚었습니다. 그런 조에는 꼭 '형님'이 한 명 있었다는 겁니다. 다들 그의 판단을 먼저 묻고, 기꺼이 따랐고요.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에잇,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
토의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판이 닫혀버린 거죠.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조가 게으르거나 무능했던 게 아닙니다. 되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정확히 틀린 값으로 모여든 겁니다. A 사 임원의 회의가 왜 그렇게 순조로웠는지, 이 대목이 설명해줍니다. (학문적으로 이런 현상을 '섣부른 결정'이라고 부릅니다)
왜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실력이 늘까
메커니즘은 의외로 밋밋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경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는 말이 짧아집니다. 그거 알지, 늘 하던 대로, 저번 것처럼. 편합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학습을 갉아먹습니다. 전제가 다른 사람이 한 명이라도 끼면, 나는 내 판단을 풀어서 말해야 합니다. 왜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 근거가 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관행인지. 이 번역 노동이 실은 사고의 근육 운동입니다.
미국만큼 인구통계적 다양성(인종, 성별, 나이 등)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콩세기 실험에서 봤듯이 동일한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다양성'은 다른 차원의 이슈를 제기합니다.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100% 단일한 의견만 갖고 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즉, 사소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고, 차이에 대해 논의하다보면 더 나은 의견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현장에서는 다양한 팀이 늘 손해처럼 느껴질까요? 저는 이 질문이 오늘 뉴스레터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van Dijk, van Engen, van Knippenberg가 2012년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발표한 메타분석이 답의 실마리를 줍니다. 146개 연구, 612개 효과크기를 훑은 결과, 인구통계적 다양성은 사람이 매긴 성과 평가와는 부정적으로 연결됐습니다. 그런데 매출이나 산출량처럼 객관적으로 측정된 성과에서는 그 부정적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팀은 실제로 못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평가받습니다.
우리는 불편함을 무능으로 오독합니다. 회의가 길어지면 비효율이라 적고, 이견이 나오면 정렬이 안 됐다고 적고, 말귀가 한 번에 통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 역량 부족이라고 적습니다. 그 기록이 쌓여 평가가 되고, 평가가 승진을 결정하고, 승진이 다시 팀 구성을 결정합니다. 동질적인 조직은 그렇게 스스로를 복제합니다.
과거 B 사 마케팅 조직에서 실제로 본 장면입니다. 신규 브랜드 회의에 늘 같은 세 명만 발언했고, 나머지는 회의록만 적었습니다. C 팀장은 발언 순서를 뒤집어봤습니다. 가장 연차가 낮은 사람부터 3분씩 먼저 말하게 하고, 팀장은 마지막에만 입을 열기로요. 두 달 뒤 그 팀의 회의는 20분에서 45분으로 늘었습니다. 겉보기엔 후퇴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폐기된 기획안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앞단에서 걸러진 겁니다. 회의 시간은 비용처럼 보이고, 폐기된 기획안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개인기로는 안 되는 일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겠습니다. 다양성은 자동으로 돈이 되지 않습니다. Guillaume과 동료들이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에 실은 리뷰는 다양성이 양날의 칼이라고 못박으면서, 결과를 가르는 변수를 조직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서 찾습니다. 리더십, 인사 제도, 조직 풍토, 업무 설계 같은 것들이죠.
결국 리더 한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전에 <'조직'이 사라진 리더십 세태>에서도 짚었지만, 우리 기업의 리더십 논의는 자꾸 개인기로 수렴합니다. 팀장이 포용적이면 된다, 임원이 열려 있으면 된다. 그런데 채용 기준이 핏 위주이고, 평가 항목에 매끄러운 협업이 들어가 있고, 승진 심사가 무난함을 고르는 한, 개별 리더의 선의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부터 해볼까요?
거창한 다양성 프로그램을 세우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리더 여러분 자리에서 당장 손댈 수 있는 것부터 짚어보겠습니다.
- 회의 시간이 줄어드는 걸 성과로 세지 마세요. 대신 한 안건에 나와 전제가 가장 다른 사람 한 명을 반드시 앉히세요.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회의는 짧아지고, 결정은 틀립니다.
- 리더가 먼저 말하는 회의를 접으세요. 콩 세기 실험의 그 조가 왜 중반에 멈췄는지 떠올려보시길. 발언은 연차 낮은 순으로, 리더는 맨 마지막에. 캘린더 초대장 본문에 이 규칙을 못 박으세요.
- 채용 면접 평가표에서 핏 항목을 손보세요. 우리 팀에 잘 맞겠는가를 묻지 말고, 지금 우리 팀에 없는 무엇을 가져오는가를 물으세요. 항목 이름 하나 바꾸는 데 결재 한 장이면 됩니다.
- 관점 취하기를 회의 규칙으로 세우세요. 시작 3분, 각자 이 안건에서 나와 가장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한 줄로 적게 하세요. Hoever의 실험이 알려주듯, 지시가 없으면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 평가 면담에서 협업이 매끄럽지 않다는 문장이 나오면 근거를 숫자로 요구하세요. 납기 지연 일수인지, 재작업 건수인지. 근거가 안 나오면 그건 성과 평가가 아니라 불편함의 기록입니다.
- 반기에 한 번, 팀 구성표를 펼쳐놓고 분포를 그려보세요. 출신 조직, 직무 경로, 연차, 성별. 한 칸에 몰려 있다면, 그 팀의 회의가 왜 그렇게 매끄러운지 답이 나옵니다.
마무리하며
다음에 만난다면 A 사 임원께는 다음에 이렇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20분 회의는 자랑이 아니라 진단 결과일지 모른다고요.
콩 세기 실험의 교훈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화목한 조가 정답에 가까운 게 아니라, 어색한 조가 정답에 가깝습니다. 편한 팀은 당장 빨리 굴러갑니다. 다만 그 청구서는 3년쯤 뒤, 시장이 바뀌었을 때 한꺼번에 날아옵니다. 이왕 치를 값이라면, 이번 주 회의부터 조금 불편해지시길 권해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