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리콘밸리에 '996 근무'와 같은 장시간 노동 문화가 회귀하고 있다는 소식, 접하셨을 겁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논리가 배경에 깔려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배워 온 생산성의 기본 공식, Productivity=InputOutput (생산성 = 산출/투입) 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접근법입니다. '산출(Output)'을 늘리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인 '투입(Input)', 즉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시도인 셈이죠.
하지만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이 '게으른 방정식'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과연 분모인 '투입'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분자인 '산출'의 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최선의 길일까요? 방정식의 진짜 열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요?
1. 분모의 함정: '투입'에만 집착할 때 벌어지는 일
'투입량(노동시간)'을 늘리는 전략이 매력적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눈에 보이고, 측정하기 쉽고, 통제하기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리더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의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식 노동의 본질을 간과한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노동시간과 성과는 결코 정비례하지 않으며,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수확 체감의 법칙'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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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의 급격한 저하: 8시간 동안 만들어낸 완벽한 코드와 14시간 동안 피로에 절어 만든, 버그 투성이의 코드는 같은 '산출'이 아닙니다. 후자는 오히려 버그를 잡기 위한 추가적인 '투입'(시간, 인력)을 유발하여 전체 생산성을 갉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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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고갈: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은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 뇌가 최적의 상태일 때 발현됩니다. 끝없는 노동은 창의성의 원천을 메마르게 하고,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기계적인 결과물만 낳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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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비용의 발생: 주 70시간을 일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학습, 네트워킹, 새로운 경험을 통한 재충전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이는 단기적인 산출에 매몰되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미래의 더 큰 산출)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투입' 시간만 늘리는 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세게 붓는 것과 같습니다. 새는 곳을 막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독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2. 분자를 키우는 지혜: 진짜 '산출'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그렇다면 진정한 생산성 향상은 어디에서 와야 할까요? 바로 방정식의 '분자', 즉 '산출(Output)'의 질과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투입'으로 더 높은 가치의 '산출'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스마트한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노동 시간이 1년에 1.5달 이상 적은 유럽의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업무와 결과가 고부가가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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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밀도를 높여라: 하루 8시간 중 구성원들이 진짜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불필요한 회의, 과도한 보고, 끊임없는 메시지 알림을 제거하고 '딥 워크(Deep Work)' 환경을 보장해야 합니다. 3시간의 방해받는 노동보다 1시간의 완전한 몰입이 훨씬 더 높은 가치의 '산출'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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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의 명확성을 제시하라: 조직의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명확히 하고, 핵심 과제에 자원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명확한 목표는 '투입'의 낭비를 막고 '산출'의 효과성을 극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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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이라는 엔진을 장착하라: 구성원에게 목표 달성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작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는 혁신적인 '산출'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통제와 감시는 단기적으로 '투입' 시간을 늘릴 순 있어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산출'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3. 방정식을 다시 쓰다: 똑똑한 리더는 '나눗셈'을 고민합니다
생산성(P=IO) 방정식을 대하는 두 가지 리더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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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리더십: 산출(O)을 늘리기 위해 투입(I)을 더하는, 가장 쉽지만 가장 비효율적인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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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기' 리더십: 어떻게 하면 투입(I) 대비 산출(O)의 비율, 즉 나눗셈의 결과값 자체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들은 같은 투입으로 더 많은 산출을, 혹은 더 적은 투입으로 같은 산출을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문화를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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