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제도 하나 손보겠다고 회의를 열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거 하면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데요?' 틀린 지적이 아닙니다. 대개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부작용 목록이 한 장을 넘어가는 순간, 안건은 슬그머니 다음 분기로 밀립니다. 그리고 다음 분기에도 똑같은 회의가 열립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변화 피로라기보다 변화 지연이라고 봅니다. 바꾸다 지친 게 아니라, 바꾸기도 전에 부작용 목록에 발목을 잡힌 거죠. 그러는 사이 조직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낡은 제도의 비용만 고스란히 치릅니다. 이 비용은 회계장부에 안 찍히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고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요.
며칠 전 짧은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이 부작용이 제로인 개혁은 없다입니다. 의사이면서 변호사인 정필승 씨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 국면을 두고 한 말입니다. 법 얘기는 이 뉴스레터의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저 한 문장만큼은 제도를 바꿔야 하는 리더 여러분께 그대로 옮겨 쓸 만하다고 봅니다. 같이 보시죠!
부작용이 안 보인다는 건, 아직 안 겪어봤다는 뜻입니다
제도를 설계할 때 우리는 사람들이 설계자의 의도대로 움직일 거라고 은근히 전제합니다. 실상은 다릅니다. 사람은 제도에 반응하지, 의도에 반응하지 않거든요. Bernstein이 2012년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에 발표한 연구가 이 대목을 아프게 짚습니다. 세계 2위 규모의 중국 휴대폰 공장에서 진행한 현장실험이었는데요. 상식대로라면 라인을 훤히 들여다볼수록 관리가 잘 돼야 합니다. 결과는 거꾸로였습니다. 관찰당하는 작업자들은 자기들이 찾아낸 더 나은 작업 방식을 숨겼습니다. 위에서 보면 규정 위반이니까요.
연구진이 라인 일부에 커튼을 쳐서 최소한의 사적 구역을 마련하자, 오히려 생산성이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Bernstein은 이걸 투명성의 역설이라고 불렀습니다. 투명성을 높이자는 게 나쁜 개혁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좋은 개혁이었고, 동시에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개혁의 품질과 부작용의 유무는 애초에 별개의 축이라는 거죠.
(예) B사 임원이 협업을 살리겠다며 모든 프로젝트 문서를 전사에 공개하도록 바꿨습니다. 석 달 뒤 문서 수는 늘었는데 내용이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진짜 논의는 개인 메신저로 옮겨갔고요. 그 임원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투명하게 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안 보이는 데로 다 숨어버렸어요."
숨긴 구성원들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평가와 연동된 문서를 누구나 들여다보는 판에서, 미완성 아이디어를 올릴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부작용은 저항이 아니라 적응입니다. 사람들이 새 규칙에 맞춰 합리적으로 움직인 결과인 거죠.
그래서, 개혁 전에 무엇을 정해둬야 할까요
부작용을 없앨 수 없다면 리더의 일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감당할 부작용과 감당 못 할 부작용의 선을 미리 긋는 것. 근거를 하나 더 얹겠습니다. Rafferty와 Griffin이 2006년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한 연구는 조직 변화를 세 갈래로 나눠 봤습니다.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얼마나 크게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얼마나 계획적으로 진행되는가. 앞의 둘이 커질수록 구성원의 불확실성은 올라가고 직무 만족은 내려가며 이직 의도는 높아졌습니다. 반면 계획성이 확보되면 이 흐름이 눈에 띄게 완화됐고요. 구성원이 못 견디는 건 변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예고 없이, 정리 없이 반복되는 변화입니다.
수치도 냉정합니다. HBR이 인용한 Gartner 조사에 따르면 직원 한 명이 1년에 겪는 계획된 조직 변화가 2016년 2건에서 2022년 10건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변화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74%에서 38%로 반 토막이 났고요. Gartner가 2025년에 내놓은 후속 조사에서는 구성원의 건강한 변화 수용을 이뤄냈다고 답한 경영진이 32%에 그쳤습니다. ㅜㅜ
그러면 무엇을 하실까요. 네 가지만 권해드립니다.
- 감내할 부작용을 문서로 먼저 적으세요. 도입 안건에 예상 부작용 세 줄과, 그중 우리가 감수하기로 한 항목을 명시하세요.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이건 예상했던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제도가 살아남습니다.
- 되돌릴 수 없는 선을 정하세요. 인력 이탈률, 안전사고, 고객 이탈 같은 항목에 숫자로 임계선을 세우고, 넘으면 무조건 중단한다고 확정지으세요. 리더의 기분이 아니라 지표가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 보정 시점을 캘린더에 못 박으세요. 3개월짜리 제도라면 4주 차와 8주 차, 두 번입니다. 잘 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가 뒤틀렸느냐를 묻는 자리로 설계하세요.
- 부작용을 보고한 사람에게 면책을 주세요. 새 제도의 허점을 처음 발견하는 사람은 대개 현장의 실무자입니다. 그 보고가 밉보이는 행동이 되는 순간, 리더는 아무것도 못 보게 됩니다.
(물론 이 네 가지를 다 갖췄다고 실패가 사라지진 않겠지만요) 적어도 실패가 조용히 곪는 일은 막아낼 수 있습니다. 부작용이 없는 개혁을 기다리는 건 개혁을 안 하겠다는 말의 점잖은 버전입니다. 반대로 부작용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건 개혁의 수명을 스스로 갉아먹는 짓이고요. 리더의 자리는 그 사이 어딘가입니다. 부작용을 예상하고, 어디까지 감수할지 미리 밝히고, 선을 넘으면 곧바로 고치는 것. 실로 재미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개혁을 끝까지 끌고 가는 유일한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