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영 회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조직 슬림화’입니다. AI 도입으로 조율 업무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 계층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맞물리면서 많은 조직이 구조를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영역은 중간관리자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관리 레이어를 줄이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른바 ‘조직 평탄화(flattening)’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
조직을 평평하게 만들면 정말 더 빠르고 민첩해질까요?
현장의 답은 예상과 다릅니다. 계층을 줄인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속도의 향상이 아니라 ‘병목의 이동’입니다. 중간관리자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팀장과 임원에게 업무가 집중되면서, 오히려 의사결정과 실행이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최근 조직 연구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됩니다. 관리자의 통제 범위(span of control)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부 관리자는 20명 이상의 구성원을 직접 관리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업무량이 아니라 ‘관리의 질’입니다.
Gallup 연구에 따르면, 구성원이 의미 있는 피드백을 경험할 때 몰입 수준은 크게 높아집니다. 반대로 이러한 상호작용이 부족할 경우 몰입도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즉, 조직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구조의 단순함이 아니라 ‘관리자의 상호작용 밀도’입니다.
여기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다시 부각됩니다. 중간관리자는 단순히 업무를 전달하는 계층이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전략을 실행으로 번역하고, 현장의 정보를 위로 전달하는 동시에, 변화 과정에서 구성원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이 기능이 약화되면 조직은 방향을 잃거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이 역할을 ‘제거’하면서도 ‘대체 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계층은 줄였지만, 그 계층이 수행하던 기능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단지 더 높은 비용의 인력에게 재배치됩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역할은 누가 대신할 것인가?”
조직을 단순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역할 설계 없이 구조만 바꾸는 접근입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를 줄이는 대신, 관리자의 행정 업무를 AI와 운영 지원으로 이전하고, 관리 범위를 재설계하며, 피드백과 코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를 조정합니다.
같은 ‘슬림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 조직 설계의 기준은 ‘계층의 수’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범위’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구성원을 성장시킬 수 있는 적정 범위가 어디인지부터 정의해야 합니다.
조직은 단순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역할이 명확할수록 강해집니다. 계층을 줄이기 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사라지는 자리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역할입니다.